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김영재

경기 침체 탓에 빌린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늘면서,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의 대출 관련 건전성 지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기준 전체 원화 대출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은 0.49%로 작년 12월 말(0.35%)과 비교하면 0.14%포인트 상승했다.

연초에는 은행들이 부실 채권을 털어내려는 노력 때문에 연체된 대출 규모는 감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올해 1분기(1~3월)에 석 달 이상 연체된 대출(고정이하여신) 규모는 코로나 유행 시절보다 높다. 일부 은행의 가계·자영업자 대출 관련 각종 부실 지표는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미국발 관세 충격이 하반기 우리 경제에 타격을 줄 경우 이 같은 ‘부실 대출’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코로나 때보다 많은 부실 대출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 규모는 4조8225억원으로, 작년 1분기(3조6119억원)보다 34%나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 유행으로 경제 위기가 닥쳤던 2020년 1분기(4조2707억원)보다도 5500억원 많은 것이다. 전체 여신 가운데 연체 대출(고정이하여신)의 비율인 NPL비율도 0.33%로 2023년(0.23%), 작년(0.26%)보다 크게 상승했다.

통상 은행들은 매년 1분기에 부실 대출을 털어내기 위해 외부 업체 등에 자문을 맡겨 집중적으로 부실 채권을 상·매각(매각하거나 회계에서 상각 처리)해 정리한다. 4대 은행은 올해 초에도 부실 채권에 대한 대대적인 상·매각에 나섰고, 그 규모(1조3301억원)는 작년(1조2040억원)보다 1000억원이나 많았다.

그럼에도 부실 규모는 코로나 시절보다 많은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인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대출 상황이 어려워지다 보니 아무리 털어내도 부실 채권이 예년보다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 연체율, 11년 만에 최고 수준

2분기(4~6월) 들어서도 은행 대출 연체율은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지난해 말보다 크게 높아지면서 앞으로 부실 대출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5대 은행의 지난달 전체 대출에 대한 연체율(0.49%)은 작년 말(0.35%)보다 0.14%포인트 상승했다. 대출 대상으로 보면 가계(0.36%), 대기업(0.18%), 중소기업(0.71%) 모두 작년 말보다 각각 0.07%포인트, 0.17%포인트, 0.22%포인트 뛰었다.

특히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일부 은행의 경우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할 정도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자영업자 대출 평균 연체율은 0.67%로, 지난해 말(0.48%)보다 0.19%포인트나 높다. A은행의 지난달 말 자영업자 연체율(0.57%)은 종전 최고치(2014년 9월·0.57%)와 같은 수준에 도달했고, B은행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0.56%)도 종전 최고치인 2014년 6월(0.59%) 이후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은행들은 이처럼 연체율이 악화된 배경에는 경기 침체가 심각한 상황에서 비교적 높은 금리가 이어진 점을 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들어 금리가 내려가긴 했지만, 0~1%대 금리를 기록했던 2020년대 초반보다 1~2%포인트 높은 금리가 2년 이상 계속되다 보니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당분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발 관세 전쟁 여파 등으로 경기 불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재명 정부가 자영업자 빚 탕감을 위해 추진하는 배드뱅크(부실 자산을 인수해 정리하는 전문 기관)가 부실 채권 규모를 오히려 키울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빚 탕감을 쉽게 해주면 성실히 빚을 갚으려는 자영업자들이 버티기로 돌아설 수 있고, 이렇게 되면 부실 채권이 더 쌓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