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벌어진 중동 정세 악화도 한국 주식시장의 파죽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16일 코스피 지수는 1.8% 오른 2946.66포인트로 마감했다. ‘삼천피’(코스피 3000)까지 단 1.81% 남겨뒀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소식이 전해진 지난 13일만 0.87% 하락했을 뿐, 코스피는 대선일 전날부터 8거래일째 상승 중이다. 최근 한 달 코스피 상승률은 12.17%로 주요 20국 중 단연 1위를 달리고 있다.
주식시장이 불타오르지만, 웃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삼전 개미(삼성전자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이다. 올 들어 코스피가 22.8% 오르는 동안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는 7.5% 오르는 데 그쳤다. 삼성전자가 대세 상승장에서 나 홀로 뒤처지다 보니,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전체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역대 최대치(2021년 1월·25%) 대비 10%포인트 넘게 떨어진 14%대까지 쪼그라들었다. 이 비율은 약 9년 만에 최저다.
◇삼성전자 코스피 비율 14%로 ‘뚝’
삼성전자는 소액주주는 작년 말 약 516만명으로 단일 종목으론 개인 주주가 가장 많은 ‘국민 주식’이다. 소액주주 1인당 789주를 갖고 있어 16일 종가로 따진 1인당 평균 보유 금액은 4513만원에 달한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10월쯤부터 ‘저점 5만2000원~고점 6만원’을 오가는 박스권에 갇힌 신세다. 올 3월 말 오랜만에 주가가 6만1700원을 뚫고 올라가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꺾이면서 박스권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선 주도주를 못 잡았다면 ‘삼성전자 트레이딩’이라도 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돈다. 삼성전자 주가가 5만원 근처로 내려가면 사서 6만원 되기 전 팔면 한 달 남짓한 기간에 10% 넘는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 기술 리더십 놓쳐”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AI(인공지능) 시대 기술 리더십을 놓치면서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 소외 현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삼성 반도체의 아킬레스건이 된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SK하이닉스에 따라잡힌 후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외국인 투자자도 SK하이닉스를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외국인은 최근 한 달간 ‘바이 코리아’ 행렬 와중에 SK하이닉스를 1조822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삼성전자 순매수는 8분의 1 수준인 2259억원에 그쳤다. SK하이닉스는 16일 24만8000원까지 올라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가가 박스권을 맴도는 건 투자자들이 회사가 기술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현시점에서 필요한 건 ‘희망론’ ‘기대감’이 아니라 ‘입증’”이라고 말했다.
◇시가총액 1위만 소외된 랠리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가 박스권에서 주춤해도 새 정부 정책 기대감 속에 주식 시장으로 자금은 더욱 몰려들고 있다. 13일 기준 6월 하루 평균 거래 대금은 29조9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46%쯤 늘었다. ‘동학개미(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 운동’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며 주가가 사상 처음으로 3000을 뚫고 올라가던 2021년 2월 기록한 일평균 거래 대금 32조4000억원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거래 대금 규모는 이때 이후 최대치다. 이 때문에 ‘제2의 동학개미 운동’이 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임희연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16일 “거래 대금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2021년 당시 개인 투자자들의 월별 수급은 하루 평균 9조원대에서 31조원대까지 단계적으로 늘었다”고 했다. 당시 고객 예탁금은 78조원, 신용공여잔고는 25조원으로 이른바 ‘증시 대기자금’ 합계가 100조원을 넘었다. 현재 고객 예탁금이 62조9000억원, 신용공여잔고는 18조7000억원 수준으로 아직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최근 증시 주도주는 방산, AI, 증권 등 밸류업 정책 관련주로 삼성전자 없이도 대세 상승장에 접어든 분위기”라며 “한국 산업 경쟁력의 변화가 시장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