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 등이 표시되고 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에 중동 화약고가 터지자 주식시장이 고꾸라졌다. 국제 유가는 급등했고, 글로벌 자금은 미 달러화와 금(金) 등 안전 자산으로 대피했다.

13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0.87% 하락한 2894.62에 장을 마쳤다. 8거래일 만의 하락이다. 일본 닛케이평균(-0.89%), 대만 가권(-0.96%) 등 다른 아시아 주식 시장도 주저앉았다. 유럽 주요 주식 시장도 일제히 하락 출발했다.

전통적 안전 자산인 달러화는 강세로 전환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관세 정책으로 안전 자산 지위를 의심받던 미 달러화가 중동 리스크가 부각하자 매력을 되찾았다”고 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9원 오른 1369.6원에 마감(오후 3시 30분 기준)했다.

국제 유가는 공습 사실이 알려진 직후 단숨에 10% 이상 가격이 뛰었다. 최근 주춤했던 안전 자산인 국제 금 가격은 하루 만에 1.3% 오른 온스당 3466달러를 기록했다. 대표적인 위험 자산 비트코인 가격은 하락했다.

◇‘이재명 랠리’ 멈춰 세운 중동 쇼크… 달러·금 강세

13일 코스피는 0.36% 오름세로 출발해, 8거래일 연속 상승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증시 개장 후 약 10분 만에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이 전해지자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결국 전날보다 0.87% 내린 채 마감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전날까지 7거래일 연속 올랐던 국내 증시의 ‘이재명 랠리’가 중동 쇼크로 제동이 걸린 셈이다.

그래픽=송윤혜

◇위험 자산 주식시장 하락

코스피는 장중 한때 1% 넘게 하락하며 2870대까지 밀렸지만, 외국인이 장 후반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음)로 전환하면서 낙폭을 일부 만회했다. 이날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1212억원, 4669억원 순매수했고, 기관은 6109억원 순매도했다. 코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2.61% 내린 768.86으로 마쳤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달 들어 주식시장이 많이 올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그동안 상승에 따른 숨 고르기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전쟁 위기에선 상대적으로 성장주 비율이 높은 코스닥 시장이 더 큰 조정을 받는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으로 돌입할 경우 원유 수송이 차질을 빚으며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점이 주식시장 같은 위험 자산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는 관세 카드와 유가 급등세가 맞물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면 글로벌 주식시장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삼성전자(-2%), 현대차(-1.2%) 등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일제히 하락했지만 상승한 종목도 있다. LIG넥스원(14.4%), 한국항공우주(8%) 등 일부 방산주는 폭등했다. 한국석유(30%), 흥구석유(30%) 등 석유 관련주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해상 운임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에 흥아해운(30%) 같은 해운주도 동반 상승했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쟁이 무조건 해운주에 긍정적이진 않지만 과거 경험으로 볼 때 공급망 혼란이 결국 운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전 자산 달러 가치 상승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일 대비 3.7원 내린 1355원에 출발했지만 장 초반 흐름을 바꿔 상승했다. 오후에는 한때 1373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원화는 중동 리스크에 취약한 통화이기 때문에 환율 변동 폭이 컸다”며 “중동 위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준인 유가가 오르면서 원화 값도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중동 정세 불안정 탓에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달러화가 강세로 전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로화·일본 엔화 등 주요 여섯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공습 이후 98.25로 전날보다 0.4%가량 올랐다.

이날 달러인덱스의 움직임은 최근 달러화 가치 흐름과 달랐다. 달러인덱스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앞둔 올 1월 13일 109.96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관세 전쟁에 따른 미국 경제 둔화 조짐, 미국 연방 정부 부채 우려가 맞물려 줄곧 하락세를 탔다. 전날만 해도 달러인덱스가 3년 3개월 만에 최저치(97.6)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자 곧장 상승세로 방향을 튼 것이다.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과 재정 적자 우려 속에 미국 자산을 매도하는 ‘셀(sell) 아메리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중동 위기 상황으로 달러의 안전 자산 지위가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미국 자산인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이날 오후 4.345%로 하락(국채 가격은 상승)했다. 지난 5월 22일 4.61%까지 올랐던 10년물 금리는 한 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시장을 위험 회피 심리가 지배할 때, 미국 자산으로 피하는 경향이 드러난 셈이다.

반면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가상 자산 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이스라엘의 공습 소식이 전해진 이날 오전 중 1시간 만에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개당 10만2000달러 선까지 밀렸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 자산 전체 시가총액이 3%가량 급감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시장 출렁임이 언제까지 어느 정도 지속할지는 이란 정부의 반격 규모에 따라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현재까지는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문디 최고투자책임자 빈센트 모르티에는 블룸버그에 “최근처럼 주식시장 등이 급격하게 올랐을 때 발생하는 지정학적 위기는 종종 투자자들이 오른 자산을 팔아치워 차익을 실현하는 일종의 핑계로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