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가 대부분 국가에 10% 관세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눈에 띄게 상승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소비자 물가는 전월 대비 0.1% 상승해, 전문가 예상치(0.2%)를 밑돌았다.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서는 2.4% 상승해, 전달(2.3%)보다는 오르긴 했다지만 의외로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래픽=양진경

저유가가 물가 안정에 큰 몫을 담당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서부텍사스유(WTI)는 지난달 초 배럴당 57달러를 기록, 2021년 3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트럼프 관세 정책으로 각국의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여겨졌는데, 산유국들은 생산량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가솔린은 소비자물가를 계산할 때 가중치가 3%일 정도로 미국 물가에서 비중이 큰데, 지난달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전월보다 2.6% 하락해 전체 물가를 끌어내렸다.

트럼프 관세가 언제까지, 어느 정도로 지속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올라갔다 내려가는 것이 장난감 요요와 비슷하다고 해서 ‘요요 관세’로 불리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제임스 에겔호프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요요처럼 움직이는 관세 때문에 기업들이 가격 인상 의사 결정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가격 동결 압박도 한몫한다. 지난달 월마트가 가격 인상을 선언한 후 트럼프가 “기업이 관세를 흡수하라”고 강하게 질타하자, 건자재 소매 업체인 홈디포는 가격 동결을 선언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물가 통계 자체가 잘못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가지표를 작성하는 미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정부 인력 채용 동결 여파로 4월부터 가격 조사 대상 사업체 수를 축소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조사원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물건 값을 조사해 왔는데, 최근엔 조사 인원이 부족해 유사한 대체재로 가격을 추정하는 품목을 늘렸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소비자물가 지표가 나오자 “훌륭한 (물가) 수치가 나왔다.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안심하기엔 이르다. 최근 서부텍사스유 가격은 배럴당 68달러 선으로 지난달 저점보다 20% 가까이 올라 있다. 기업들이 관세 인상 전 쌓아둔 재고도 소진되고 있다는 신호가 늘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은 10일 “최근 미국 경제지표가 양호해 보이지만, 실제 수치가 머지않아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트럼프 압박에도 연준은 금리 인하에 신중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시장에서는 오는 19일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확률을 99% 이상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