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도매업을 30년 넘게 운영해온 최씨(65)씨는 요즘 언제까지 회사를 직접 운영해야 할지 고민이다. 30대 자녀가 둘이나 있지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데다 가업 이야기를 꺼내면 부담스러운 눈치다. 자녀에게 가업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관심이 있다면 최씨가 아직 건강할 때 미리 경험을 쌓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불황 속 은퇴 앞둔 경영자들
한국은행이 지난 5월 발표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8%로 경기 전망이 어두운 상황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대표의 고령화로 승계를 준비해야 하는 기업들은 고민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승계(承繼)란, 기업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상속·증여를 통해 기업의 소유권이나 경영권을 승계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를 언제 어떻게 승계할지는 경영자의 의향이 크게 반영되며 업종, 매출 규모, 상장 여부, 필요 전문성 및 매각 가능성 등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경영자의 자녀가 회사를 잇는 ‘가업(家業) 승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자녀가 가업을 잇는 대신 지분 매각, 전문 경영인 선임, 임직원 등 제3자 승계를 선택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 때로는 끝까지 마땅한 승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2025 중소기업 가업 승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인 중소기업 경영자가 자녀에 의한 가업 승계를 하지 않는 이유로 ‘자녀가 원하지 않기 때문에(41.3%)’가 가장 많이 꼽혔다. 노후를 앞둔 경영자가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도, 자녀가 승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가업 승계로 절세 효과
한편 중소기업중앙회 실태조사 응답자의 약 73%는 자녀에 의한 승계를 계획하거나 진행 중이며, 또는 승계를 완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선택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가업 승계 지원 제도를 활용하면 일반적인 상속·증여보다 세금 부담이 현저히 낮다. 승계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세금인데, 중소기업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가업상속공제나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 특례를 활용할 수 있다. 상속·증여까지 생각하면, 단순히 회사를 매각하여 자금을 전해주는 것보다 자녀에게 가업을 승계하는 것이 절세 측면에서 유리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둘째, 회사 경영자의 강한 의지다. 특히 경영자가 창업주인 경우, 회사는 단순한 자산이 아닌 ‘인생의 결실’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외부 매각보다 자녀가 회사를 이어가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 보는 경영자가 많고, 이러한 의지가 자녀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셋째, 최근에는 승계 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다. 과거처럼 후계자가 모든 걸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해외 기업처럼 전문 경영인과의 공동 경영, 지분 유지 후 외부 경영 위탁, 임직원 승계와의 병행 등 유연한 가업 승계 모델이 늘어나면서 경영 부담을 줄인 사례도 많다.
◇일과 사람이 핵심
결국 자녀 입장에서 가업 승계는 더 이상 ‘당연한 수순’이 아닌, 나와 가족의 미래가 달린 ‘진지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러 이점을 고려하여 자녀가 가업을 승계하기로 결정했다면, 성공적 가업 승계를 위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후계자의 경우, ‘일’과 ‘사람’이라는 핵심 역량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먼저 ‘일’의 경우, 후계자는 실제 현장 경험을 통해 사업 구조와 리스크, 고객·거래처 관리 방법까지 직접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다. 경영자와 함께 일 자체를 배울 뿐 아니라, ‘왜 이렇게 했는지’를 묻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기업 내부에 축적된 기술과 경영 노하우는 단기간에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년간의 업무 경험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사업 성장을 위해 디지털화와 인공지능(AI) 흐름에 맞춰 온·오프라인 유통망을 다변화하거나, 임직원과 협업한 업무 프로세스 효율화도 후계자의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사람’은 안정적인 승계뿐 아니라 향후 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특히 승계 전후 사내 임직원과의 신뢰 관계 형성은 물론, 주요 고객 및 협력업체 네트워크의 연속성 확보가 중요하다. 따라서 후계자가 함께 일하면서 인적 자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경영자가 승계 이전부터 도울 필요가 있다.
◇가업 승계 프로그램 활용
또한 후계자 본인의 경영 철학과 실행력을 갖춰 나가야 한다. 관련하여 많은 기업 2세들이 경영 실무 교육, 인문학적 교육, 네트워킹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이 중 인문학적 수업은 철학, 문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의 리더에게 배우며 자신의 정체성 및 경영 철학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다. 네트워킹은 자녀 세대가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다른 기업의 2세들과 기업 운영, 정체성, 인간관계 등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는 후계자의 불안을 줄이는 강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기업의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부·민간 프로그램이 많아 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중소기업중앙회 ‘차세대 CEO(최고경영자) 과정’ 및 지역 상공회의소 세미나·포럼 등이 대표적이며, 주요 대학·MBA 및 금융기관에서도 2세 경영인을 위한 교육과 네트워킹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결국 가업 승계는 단순히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준비해 가는 긴 여정이다. 경영자뿐 아니라 자녀의 고민과 성장까지 존중하며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