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가상 자산인 코인의 값을 ‘1코인=1000원’이나 ‘1코인=1만원’처럼 원화 가치에 연동시키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이 허용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을 10일 발의했다. 실생활에서 원화처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코인을 한국은행이 아닌 민간 업체가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이재명 대통령 공약이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일본 등 주요국은 한국보다 앞서 스테이블 코인 법제화에 착수했다. 급증하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을 선점하면서 코인에 연동된 자국 통화 가치도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이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을 경우 원화 가치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제 국경 허무는 스테이블 코인

미국의 스테이블 코인 법안인 ‘지니어스(GENIUS) 액트’는 지난 5월 중순 상원을 통과했고, 하원 통과를 앞두고 있다. 홍콩도 지난 5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고, 디지털화가 더딘 것으로 평가받는 일본 또한 3월 관련 법 개정을 완료했다.

그래픽=양인성

각국의 속도전은 스테이블 코인 거래 규모가 폭증하기 때문이다. 올해 2300억달러(약 320조원)인 스테이블 코인의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28년에 2조달러(약 2800조원) 정도로 커질 것으로 스탠다드차타드는 전망한다.

관련 업계도 몸집을 키우고 있다. 전 세계 시가총액 2위 스테이블 코인인 USDC를 발행하는 서클은 뉴욕 주식시장 상장 첫날인 지난 5일 주가가 168% 뛴 데 이어 다음 날에도 29% 상승세를 이어갔다. 한국에서도 스테이블 코인 수혜주로 인식되는 카카오페이 주가가 9일 상한가로 마감한 뒤, 10일에도 16% 상승했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대표 핀테크 기업인 카카오페이가 그룹 내 메신저, 은행, 증권 플랫폼 등을 갖춘 이점을 누릴 수 있어 향후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리라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선 NHN, 헥토파이낸셜, KCP, KG이니시스, 다날 등 결제주를 수혜주로 보고 있다. 홍콩 주식시장에서도 중안짜이셴 등 관련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전 세계 결제 국경을 뛰어넘는 간편함 때문이다. 국제금융결제망(SWIFT)을 거치는 전통적인 송금 방식은 평균 2~5일 걸리고, 환전 수수료 등과 중개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가 6%가량 붙는다. 또 SWIFT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은행 계좌가 꼭 필요하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을 통한 송금은 돈을 보내려는 사람의 가상 자산 지갑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수취인의 지갑으로 바로 보낼 수 있다. 수수료는 0.5% 이하이며, 거의 실시간 송금된다.

한국은 그나마 결제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어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이 덜하지만, 금융 인프라가 미비해 은행 계좌 트기도 어려운 저개발국이나 자국 통화 가치가 불안정한 나라들에선 달러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이 각광받는다. 인플레이션이 심하고, 금융 위기가 발생한 국가에서 그 나라 통화가 아닌 미국 달러화가 통용되는 것과 비슷하다. 달러 가치와 1대1로 연동된 테더(USDT), 서클(USDC)이 스테이블 코인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앞으로 스테이블 코인의 쓰임새는 커질 수밖에 없는데, 한국이 손 놓고 있을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원화가 존재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통 금융시장 교란 가능성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원화의 쓰임새를 늘릴 수 있다. 이종섭 서울대 교수는 “은행 계좌를 열 수 없는 중남미 10대 소녀가 BTS 굿즈를 사려면 지금은 엄마 계좌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나오면 바로 결제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이 금융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은 ‘1코인=1달러’라는 약속을 기반으로 한다. 코인 발행사는 이 약속을 보증하기 위해 1달러어치의 코인을 발행한 돈으로 1달러어치의 미 국채 등을 산다. 언제든지 코인 환전에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지급 준비금(담보)이다. 그런데 발행사가 적절한 준비금을 확보했다는 믿음이 흔들려 사용자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대량 매각할 경우 그 충격이 미 국채 등 전통적인 금융시장에 전이될 수 있다. 코인 발행사들의 투명성을 정부가 강력하게 감독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