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공시가격 12억원 넘는 주택으로, 집을 여러 채 보유하고 있는 다주택자도 주택연금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 나왔다. 주택연금은 갖고 있는 집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또는 일정 기간 동안 매달 연금 형태로 돈을 받는 제도다. 그간 정부가 운영하던 주택연금 정책은 주택 공시가격이 12억원 이하인 경우만 해당돼 접근성이 제한적이었는데 이를 보완하는 민간 상품이 나온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맞춤형 주택연금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만큼 주택연금 상품이 더 다양해질 가능성이 있다.
◇12억원 넘는 주택도 가능
하나금융그룹은 지난달 26일부터 각 하나은행 지점을 통해 ‘하나더넥스트 내집연금’ 판매에 나섰다. 주택 공시가격이 12억원 넘는 주택을 보유한 고객들이 대상으로, 하나금융 측에 따르면 출시한 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가입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입 자격은 기존 주택연금과 비슷하다. 부부 중 한 명이 만 나이 55세 이상이어야 하고, 부부 공동 명의로 2년 이상 소유한 뒤 거주 중인 집이 대상이다. 현재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운영하는 정부의 주택연금 제도와 크게 다른 건 고가 주택 보유자도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정부 주택연금 제도는 1주택자이거나, 혹은 다주택자라면 보유 주택의 합이 12억원 이하인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이 때문에 고가의 주택은 갖고 있지만 생활비는 부족한 고령층의 경우 부동산 자산을 연금화하기 어려웠다.
◇대출 규제도 제외
하나금융이 내놓은 주택연금은 본인 주택을 신탁으로 맡기고 같은 주택에 계속 거주하면, 하나생명을 통해 매달 연금을 받는 구조다. 가입자와 배우자가 사망할 때까지 종신으로 지급된다. 받은 연금 총액이 주택 가격을 초과해도 죽을 때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비소구 방식’으로 설계됐다. 부부가 사망한 뒤 주택을 매각해도, 상속인에게 부족한 금액을 청구하지 않는다. 만약 주택 매각 이후 남은 재산이 있다면 이는 상속인에게 돌아간다. 연금 지급 유형은 매월 같은 금액을 받는 ‘정액형’, 초기 일정 기간 더 많은 금액을 받고 이후에 줄어드는 ‘초기 증액형’, 3년마다 4.5%씩 월 지급금을 늘리는 ‘정기 증가형’ 세 가지로 기존 주택연금과 동일하다.
하나금융에 따르면 20억원 상당의 주택을 보유한 고객이 65세에 가입한 경우 매달 360만원가량을 받을 수 있다. 기존 주택연금의 월평균 수령액이 122만원 정도인데, 고가 주택인 만큼 더 많은 연금액을 받는 것이다. 이 외에도 DSR(총부채 원리금 상환 비율), LTV(주택 담보 인정 비율) 등의 대출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에 시중은행들도 집을 담보로 매달 돈을 받는 ‘역모기지론’을 운영 중이었다. 그러나 이는 평생 지급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만기 후에 매달 받았던 연금에 이자까지 합쳐 갚아야 하므로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은행이 퇴거 조치나 주택 경매를 할 수 있고, 이렇게 받은 연금이 대출로 간주돼 DSR 등의 대출 규제가 적용되는 것도 부담이었다.
◇’맞춤형 주택연금’ 나올까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페이스북을 통해 ‘맞춤형 주택연금을 확대해 노후 소득을 안정시키고, 재산 관리가 어려운 어르신을 위한 공공신탁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기존 주택연금 가입 조건이나 혜택을 개선해 더 많은 고령층이 주택연금을 통해 노후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정부의 주택연금 제도는 2007년 도입돼 20년 가까이 운영되고 있지만 선풍적인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주금공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주택연금 누적 가입자는 13만7997여 명으로, 만 55세 이상 인구수 대비 0.73%, 만 55세 이상 가구주 대비 비율이 1.27%에 그쳤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55~79세 주택 보유자 38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택연금 가입을 꺼리는 가장 큰 이유로 ‘받는 연금 총액이 집값보다 적을 수 있다’는 손실 우려(18.2%)가 가장 크게 꼽혔다. 이어 연금 수령액이 주택 가격 변동에 따라 조정되지 않는다는 점(15.1%), 집을 자녀에게 온전히 물려주고 싶다는 상속 희망(15.1%) 등이 주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