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 명단에 올렸다. 7월까지 이어질 한미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환율 정책 공세가 거세질 전망이다.

미 재무부는 1년에 두 차례 환율 보고서를 발간하는데, 5일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처음 나온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 등 9국을 환율 관찰 대상국에 올렸다. 한국은 2016~2022년 환율 관찰 대상국에 포함됐다가 2023년 11월 빠졌지만, 지난해 11월 다시 관찰 대상국 명단에 포함됐다.

미국은 자국과 교역 규모가 큰 나라들이 환율에 인위적으로 개입해 무역수지 흑자를 거두는 게 아닌지 감시한다. ①대미 무역 흑자가 150억달러 이상이고 ②경상수지 흑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이며 ③달러 순매수 규모가 GDP의 2% 이상이면서 1년 중 8개월 이상 달러를 순매수해 환율을 높이려 했는지,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 기준을 충족하면 환율 관찰 대상국이 된다.

한국은 무역 흑자가 550억달러 이상이고,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5.3%라 관찰 대상국이 됐다. 정량 지표에 의한 판단이라 한국의 관찰 대상국 지정은 예정 수순이었지만, 최근 달러 약세를 감안하면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인위적으로 달러 대비 환율을 올려 수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대미 무역에서 이익을 본다’는 미국의 주장에는 어색한 측면이 있다.

이번에 관찰 대상국 명단에 오른 국가는 한국 등 9국이다. 올 초 이후 5월 말까지 달러 대비 한국 원화 가치는 6.3% 상승(환율은 하락)했다. 환율을 조작하려 했다는 혐의가 적용되려면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행위가 관찰돼야 하는 게 일반적인데, 반대 방향이었다. 다른 나라들도 거의 마찬가지다.

그래픽=이철원

스위스 프랑(9.3%), 독일·아일랜드가 사용하는 유로(8.8%), 대만 달러(8.7%), 일본 엔(8.3%), 싱가포르 달러(5.4%), 중국 위안(1.4%) 등이 모두 미국 달러 대비 가치가 올랐다. 다만 베트남 동의 가치는 올 들어 2.1% 떨어졌다.

미 달러 가치를 주요 6개 통화와 비교한 달러인덱스는 올 들어 약 8.8% 하락했다. 경제 전문지 마켓워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달러화의 연초 기준 최악의 출발”이라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달러를 자산 배분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관세 전쟁, 과도한 연방 정부 부채 등이 달러 자산에 등 돌리게 해 결과적으로 달러 가치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환율 보고서를 환율 감시용보다는 미국 정부가 각국과 벌이고 있는 관세 협상 압박용으로 사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미 재무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에게 “중국이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으며, 올해 가을에는 조작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ABC방송은 전했다. 미 재무부는 이날 일본에 대해선 “달러에 대한 엔화 약세를 정상화하고, 양국 무역 관계를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