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놓고 서로 정반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신한·하나은행 등 일부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상환 기간을 늘려 대출자 부담을 줄이거나 대출 한도를 2배로 늘리지만, KB국민·우리은행 등은 금리를 올려 대출을 옥죄고 있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로 ‘막차 대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대출자들이 은행 간 작은 대출 조건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나타나는 일이라는 분석이다. 대출 한도 여유가 있는 은행은 조건을 완화해 경쟁에 나서지만, 대출 조건을 완화했다가 갑자기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 조건을 조이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금융 소비자들로서는 발품과 손품을 팔아야 유리한 대출 조건을 찾을 수 있는 시기가 됐다.
◇푸는 신한·하나, 조이는 KB국민·우리
신한은행은 4일부터 서울을 포함한 전국 전 지역의 주택담보대출 만기를 30년에서 40년으로 확대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9월 가계 대출이 급증하자 주택담보대출 최장 기간을 30년으로 줄인 바 있다. 그러다 올해 2월 비수도권에서만 40년으로 늘렸고, 이번에 수도권마저 원상 복구했다. 또 각종 전세 대출 관련 규제도 추가로 완화했다. ‘갭투기’에 이용될 우려가 있어 막았던 조건부 전세 대출(세입자가 전세 자금 대출을 받는 날 해당 주택의 소유권이 바뀌는 조건으로 이뤄지는 대출)을 지난달 2일 서울 외 지역에 한해 허용했고, 4일부터는 서울에도 조건부 전세 대출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6일부터는 지금까지 비대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 대출에 없던 우대금리를 신설해 0.1%포인트 적용했다. 우대금리는 금리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하나은행도 주택담보대출 관련 일부 규정을 완화했다. 지난달 29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인 ‘하나원큐 아파트론’ 한도를 기존 최대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올렸고, ‘하나원큐 주택담보대출’도 한도를 최대 5억원에서 7억원으로 높였다. 지난 2월 대출 한도를 줄였었는데, 넉 달 만에 되돌리며 더 공격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영업에 나섰다.
반대로 KB국민은행은 4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인 ‘KB스타아파트담보대출’의 가산 금리를 0.17%포인트 올렸다. KB국민은행은 “시장 금리와 무관하게 수요를 조절하고, 선제적인 가계 대출 관리를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전월 대비 0.06%포인트 올렸고, 주기형(5년) 대출금리도 기존 연 3.37~4.87%에서 연 3.43~4.93%로 0.06%포인트 상향했다.
◇‘속도 조절해야’, ‘빼앗겼던 고객 찾아와야’
은행들이 이처럼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대출 여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주택담보대출 영업에 나섰던 은행은 증가한 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지만, 규제를 조였던 은행은 넉넉한 실탄을 바탕으로 빼앗겼던 고객을 되찾기 위해 적극 나서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의 경우 3월 말까지만 해도 연 3.87%였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4월 말 연 3.6%로 낮춘 데 이어 지난 12일에는 연 3.56%로 조정했었다. 특히 카드·적금 가입 같은 조건 없이도 다른 은행의 하단 금리와 동일한 수준의 단일 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내놓자 매일 대출 신청 1분 내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말 주택담보대출 갈아타기 취급 제한도 없애는 등 일부 대출 규제를 해제했다. 이에 지난 1월 164조3000억원이었던 두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5월에는 164조6700억원으로 3700억원가량 증가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소극적으로 대출을 취급했던 신한·하나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1조2000억원이나 감소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은 은행의 매우 안정적 수익원인데, 다음 달 3단계 DSR이 본격 시행되면 대출 수요가 줄어들 것이 뻔해, 지금이 수익을 낼 적기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공격적으로 대출 영업에 나섰던 은행에 빼앗긴 고객을 되찾아오려면 규제를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