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29일 코스피 지수가 1.89% 오른 2720.64에 거래를 마쳤다. 연중 최고치이자, 작년 8월 1일(2777.68) 이후 10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단 1.17%만 더 상승하면 올해 저점(4월 9일 2293.7포인트) 대비 20% 오르는 기술적 강세장(불마켓)에 돌입하게 된다. 올해 증시가 강세장에 들어선 곳은 독일·스페인 등 유럽 몇몇 나라와 홍콩 정도뿐이다. 한국 증시가 세계 몇 안 되는 ‘불마켓’으로 꼽히게 되는 셈이다.

이날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1.5%에서 0.8%로 대폭 낮추는 등 경제엔 먹구름이 끼어 있지만 주가는 뛰며 강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외국인이 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급락한 뒤 박스권을 맴돌던 한국 주식시장에 외국인들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작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 내내 순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은 것)하며 한국 주식을 외면해 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장 순매도 기록이었다. 특히 지난달 순매도 규모(13조5920억원)는 역대 최대 기록(2020년 3월 13조4500억원)마저 깨는 기록이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 29일까지 외국인들은 코스피 1조7781억원, 코스닥 2096억원 등 합계 2조원 가까운 순매수로 돌아왔다.

◇10개월 만에 돌아온 외국인

한국 주식을 무섭게 팔아 치우던 외국인이 다시 돌아온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일단 관세 전쟁 긴장 완화. 미국이 주요국에 대한 새로운 상호 관세를 7월 초까지 유예하기로 하면서 수출 주도 아시아 증시를 외국인이 다시 찾기 시작했다.

둘째는 원화 환율이다. 한국은 원화 가치가 주요국 중에서 가장 많이 뛰면서 외국인 입장에선 환차익을 보면서 한국 증시에 투자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됐다. 최근 한 달 새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4%가량 하락(원화 가치 상승)했다. 원화로 한국 주식을 산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선 주가가 오르지 않아도 달러로 환산한 투자 수익률 4%를 거저 얻는 셈이다.

과거에도 원화 강세 국면에 코스피가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7년 하반기 원화 환율이 달러당 1150원에서 1050원 선으로 뚝 떨어질 때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형주 매수세에 힘입어 코스피가 2500선을 돌파했었다.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반에도 글로벌 경기 회복 국면에서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외국인들이 대규모 순매수를 한 결과,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3000선을 뚫었다.

세 번째 이유는 ‘정치 효과’다. 다음 달 3일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등 주요 후보들이 1400만 주식 투자자 표심을 노려 너도나도 주가 부양 공약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9일 “아시아 증시를 상회하는 한국 증시의 최근 성과는 대선 이후 한국 증시가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버리고 하이닉스는 담는다

기록적인 순매도를 접고 오랜만에 돌아온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 바구니에 무엇이 담기고 무엇이 빠졌는지를 보면, 전과 다른 부분이 읽힌다.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외국인 순매수 최상위 종목에는 SK하이닉스(1조4520억원)가 있다. 그 뒤로 두산에너빌리티,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삼성중공업, HD현대미포, LIG넥스원 등 조선·방산주가 대거 포진해있다.

반대로 순매도 1위는 삼성전자로, 한 달 사이 1조3000억원 가까이 순매도를 기록 중이다. 과거 외국인들이 대장주인 삼성전자를 사면서 한국 증시에 들어오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 점이다.

또 이번 원화 강세기에는 수출주보다 식음료나 화장품 같은 내수주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4월부터 이달 28일까지 KRX 지수 중 상승률이 가장 높은 것은 KRX 유틸리티 지수로, 상승률이 32.6%에 달한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이 여기 속한다. KRX 증권(30.12%), 식료품 업종이 포함된 KRX300 필수소비재(16.44%)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김수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2차전지, 자동차의 비율을 언제 확대할지에 따라 앞으로 증시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