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관련주 주가가 연일 약세를 보이자 개인 투자자들이 저가 매수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매수 적기가 아직 아니란 신중론이 나온다. 미국발(發) 관세 정책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장기적 영향에 유상증자를 비롯한 개별 기업 이슈가 맞물린 탓에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8일까지 주요 이차전지 종목 주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 주가가 10.93% 하락한 가운데 LG화학(051910)(-10.23%), SK이노베이션(096770)(-8.05%) 등 다른 코스피 관련주도 대부분 부진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에코프로(086520)(-19.8%), 에코프로비엠(247540)(-12.51%) 등도 주가 추락을 피하지 못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4.44%)와 코스닥 지수(1.61%)가 상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달 들어 삼성SDI,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이차전지주 다수가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공모가인 30만원선이 무너지며 코스피 시가총액 순위도 4위로 내려앉았다.
이차전지 종목 주가가 내리막길을 걷자 개인 투자자는 저가 매수에 나섰다. 이달 들어 개인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 2위에 LG에너지솔루션(3282억원)이 이름을 올렸다. LG화학(1823억원)과 삼성SDI(006400)(1132억원)는 각각 5위와 10위를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901원)과 엘앤에프(066970)(383억원) 등도 순매수 상위권에 올랐다.
이차전지 종목의 하락세는 전기차 산업의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과 함께 미국 IRA 폐지 우려가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최근 IRA에 포함된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가 최악의 시나리오인 전면 폐지를 피한 덕에 이차전지주 주가가 일시 반등하기도 했으나, 곧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다.
업황 부진에 더해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자체가 약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CATL, 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 밀리고 있어서다. 현재 CATL과 BYD 두 기업의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55%에 달한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배터리 버블의 가장 큰 원인은 친환경 정책에도 속도 조절이 있을 수 있다는 시장 논리를 간과한 데 있다”며 “배터리 공급망을 중국이 장악한 현 상황은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이 자칫 중국 전환(Chinese Transition)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적자가 지속되자 일부 이차전지 기업은 유상증자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3월 삼성SDI는 2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연중 최저가를 기록했다. 포스코퓨처엠(003670) 역시 이달 1조1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발표한 직후 주가가 7% 이상 급락했다.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자 삼성SDI 주요 임원은 약 1억7000만원, 엘앤에프 이사회 의장은 이달 약 1억원 규모로 자사 주식을 매입했다.
주가가 크게 빠졌지만, 증권가에선 여전히 바닥이 아니란 신중론이 나온다. 한화투자증권은 28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들어 이차전지 관련 주식을 매도하거나 공매도한 투자자가 수익을 냈다”며 “트럼프 정부가 예고한 보조금 축소, 환율 변동과 실적, 그리고 각종 이벤트가 여전히 업종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이차전지 업종 비중을 한 달 더 축소할 것을 제안했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저가형 모델이나 테슬라 로보택시 출시 등으로 이차전지 침투율이 상승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최악은 지나갈 수 있다”며 “진짜 바닥인지는 여전히 고민스럽지만, 적어도 이차전지 스터디를 재개할 시점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