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7월 수도권 대출 한도를 줄일 것이 예고되자 주택담보대출 수요가 꿈틀거리고 있다. 대출 한도가 줄기 전에 미리 돈을 빌려두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은행들은 온라인 대출 개시를 하자마자 ‘오픈런’에 1분 내에 신청이 마감되기도 하고, 일부 시중은행은 온라인 신청이 몰리자 하루 대출 건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2일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2조8443억원 늘었다. 이는 이 은행의들 1~4월 주택담보대출 월평균 증가액(2조7416억원)을 넘는 것이다. 이달 초 긴 연휴로 은행 영업일이 많지 않았는데도, 주택담보대출은 더 빠르게 늘었기 때문이다.
◇비대면 대출 오픈런 이어져
최근 KB국민은행 앱에서 주택담보대출 신청 버튼을 누르면 이른 오전부터 ‘신청 가능한 대출 건수가 모두 소진돼 신청이 불가하다’는 안내 문구가 뜬다. 대출 희망자가 많아 모바일 앱을 통한 하루 대출 건수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비대면으로만 대출 신청을 받는 인터넷은행들은 상황이 더 심하다. 카카오뱅크는 오전 6시, 케이뱅크는 오전 9시 대출 개시 시간이 되면 1분 내에 신청이 마감된다. 인터넷에서는 ‘해당 은행 시계와 똑같이 시간을 설정하라’ ‘필요한 정보를 미리 메모장에 복사해두라’ 등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받기 성공 노하우가 공유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강화된다고 하니 막차 수요가 몰리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정부는 7월 1일부터 수도권에 대해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DSR은 연간 원리금 부담액을 대출자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게 하는 규제다. 스트레스 DSR은 여기에 더해, 향후 금리가 더 오를 가능성까지 감안해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을 더 줄이는 것이다.
예컨대 지금 대출받는 금리가 연 4%라면, 여기에 스트레스 DSR 산정을 위해 1.2%포인트 금리를 더 붙여 연 5.2% 대출을 받는 것으로 계산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가상의 원리금 부담이 늘어나 총대출액이 줄어든다. 금융 당국의 시뮬레이션 결과, 연 소득 5000만원인 사람이 수도권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경우(변동금리 연 4.2%, 30년 만기 기준) 지금보다 1000만원 정도 대출 가능 액수가 줄게 된다.
최근 대출 증가에는 앞서 2월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도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특히 3월에 주택 거래가 많았는데, 잔금 지불을 위해 2∼3개월 뒤 가계 대출에 반영돼 가계 대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은행들은 대출 금리 인상하기도
막차 수요 등이 몰리자 일부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인상해 대응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일부터 비대면 아파트 담보 대출 금리 하단을 0.25%포인트 올려 3.69%로 설정했다. SC제일은행도 19일 가계 대출 가산 금리를 0.2%포인트 인상했다. 우리은행은 18일 직장인 대출 우대 금리를 폐지했다. 우대 금리를 폐지하면 전체 대출 금리가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1년 대출 가능액을 은행마다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대출을 급격하게 늘리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올리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금리 하락기에는 대출 금리가 예금 금리보다 빠르게 내려가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의 차이인 예대 금리 차가 줄면서 은행 수익도 감소한다. 하지만 이번 금리 인하기에는 은행들이 대출 수요를 막기 위해 오히려 대출 금리를 올리거나 최대한 인하 폭을 줄이면서 예대 금리 차는 커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 3월 평균 예대 금리 차는 1.472%포인트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작년 10월(1.036%포인트)보다 오히려 더 커졌다.
이를 바탕으로 은행들은 역대급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은행의 당기 순이익은 6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7% 늘어 1분기 기준으로는 2023년 1분기(7조원)에 이어 역대 둘째 실적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