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로서 기업과의 대화를 국내 기업에서 해외 기업으로 확대하겠다고 한 국민연금이 관련 준비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그간 해외 기업과 대화가 적었던 국민연금의 경험치 축적을 곁에서 도울 자문기관 선정 절차에 돌입했다. 국민연금은 전체 기금 적립금의 35% 이상을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달 20일 ‘해외 주식에 대한 기업과의 대화 관련 주주활동 용역기관 선정’ 공고를 냈다. 국민연금은 사업 추진 배경에 대해 “기금의 해외 주식 비중이 확대되고, 해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등 해외 기업과의 대화 필요성이 커졌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해외 ESG 이슈 발생의 대표적인 예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언급했다. 국내에서 수많은 호흡기 질환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는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영국계 옥시레킷벤키저 등 다국적 기업도 여럿 연루됐다.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투자가 날로 늘어나는 만큼 주요 주주로서 더 큰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앞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작년 9월 ‘해외 주식에 대한 기업과의 대화 도입 방안’을 의결했다.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해외 기업의 국내외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터지거나 해외 기업 상품과 관련해 소비자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국내 기업과 마찬가지로 해외 기업에 대해서도 대화에 나설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의 이번 자문기관 선정을 본격적인 대화의 시작점으로 본다. 다만 국민연금은 해외 기업과 대화를 노련하게 리드할 정도로 경험이 쌓인 게 아닌 만큼 우선 2026년까지는 자문기관을 통한 간접 대화에 주력하고, 추후 직접 대화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자문기관으로부터 대화 주제 및 대상 기업 선정, 미팅 조율, 중간 목표(Milestone) 달성 여부 검토, 대화 노하우 전수를 위한 현장 훈련 프로그램 등의 용역 서비스를 받으며 직접 대화에 필요한 역량을 쌓는다는 방침이다.
국민연금은 배당 정책, 기후 변화, 산업 안전 등 기업 가치와 밀접한 사안과 관련해 투자 대상 기업의 자발적인 개선을 유도하고자 지난 2019년 1월부터 국내 기업과 대화를 시작한 바 있다. 기업 활동이 주주권 침해 등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해당 기업에 서한을 보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식이다. 우선 비공개 대화를 하고, 기업이 개선하지 않으면 공개 대화로 전환한다.
대화 상대를 국내 기업에서 해외 기업으로 확장하는 건 국민연금의 전체 투자에서 해외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2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기금 적립금은 1227조4930억원이다. 이 중 국내 주식은 152조9830억원, 해외 주식은 434조6830억원이다. 비중으로 보면 각각 12.5%, 35.4%로 해외 주식 투자 규모가 3배가량 많다.
2023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주요 투자 종목을 보면 애플의 자산군 내 비중이 4.11%로 가장 높다. 원화 환산 평가액은 13조1724억원이다. 그 뒤를 마이크로소프트(3.48%·11조1496억원), 아마존(1.71%·5조4887억원), 엔비디아(1.60%·5조1299억원) 등이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