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 이슈가 불거지면서 한진칼(180640) 주가가 연이틀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같은 경영권 이슈에도 동성제약(002210) 주주는 웃지 못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고 회사가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급기야 주식 거래가 정지됐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면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주식을 더 사는 것만을 기대하지만, 정반대 사례도 있다. 회사를 지키려는 경영진이 자금이 부족하면 기습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할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 한진빌딩 모습./ 뉴스1 제공

한진칼 주가는 지난 13일부터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회사의 2대 주주인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18.46%로 늘리면서 최대주주인 조원태 회장과의 지분 격차를 1.67%로 좁히자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주가를 끌어올렸다. 지난 12일 8만원대였던 주가는 이틀 만에 15만원대로 올라서며 최고가를 갈아치웠다.

호반그룹이 기존 경영권을 흔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뒤 15일 한진칼 주가가 17% 급락했지만 경영권 분쟁이 점화되기 전과 비교하면 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경영권 분쟁이 주가를 움직이는 이유는 지분 다툼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통상 분쟁 당사자들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여력이 되는 한 최대한 지분을 매집한다.

경영권 분쟁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고려아연 사태다. 40만원대에 머무르던 고려아연 주가는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며 200만원(종가 기준)까지 올랐다. 당시 영풍·MBK파트너스가 지분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에 나서면서 주가가 4개월 만에 약 5배 뛰었다.

나원균 동성제약 대표./동성제약 제공

하지만 경영권 분쟁이 발생해도 모든 주주가 웃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동성제약의 경우 주가 상승은커녕 오히려 지난 8일부터 거래가 정지됐다. 오너 일가 내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자 회사가 기습적으로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다.

회사가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동성제약 주가는 하한가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후로는 아예 거래 정지 상태다.

업계에선 경영권 분쟁에 불리한 현 경영진이 임시주총 등 경영권 교체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회생절차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이양구 동성제약 회장이 현 경영진인 나원균 대표로부터 경영권을 되찾기 위해 이사진 교체를 위한 임시주총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임시 주총 소집이 막힌 상태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기존 대표가 관리인으로서 경영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아 현 경영진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기업회생은 경영권을 보장받으면서도 모든 채무를 유예받을 수 있는 전략적 수단으로 여겨진다. 설령 법원이 회생절차를 기각하더라도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장점으로 꼽힌다.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뉴스1 제공

동성제약 사례처럼 기업회생 신청이 본래 취지와 달리 경영권 분쟁의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앞서도 있었다.

리튬 테마주로 이름을 알렸던 코스닥 상장사 테라사이언스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최대주주와 소액주주연대가 현 경영진의 횡령과 배임 등으로 인해 거래 정지를 당했다고 주장하며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것이다. 이들은 회생절차를 통해 현 경영진을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두 차례의 기업회생 신청은 기각됐다.

경영권 분쟁 소송을 진행하던 코스닥 상장사 이노와이즈(구 화신테크) 또한 회생 절차를 택했다. 2020년 이노와이즈 인수를 위해 이노와이즈코리아가 설립되고, 양경휘 대표가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기존 실소유주였던 남모 씨와의 갈등이 본격화했다. 이후 소송 등 경영권 확보를 둘러싼 분쟁이 이어지자 회사는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결국 2021년 감사 의견 거절로 상장 폐지 수순을 밟았다.

비상장사 중에서는 비닐 랩 등 식품 포장용품으로 널리 알려진 크린랲이 경영권 분쟁에서 기업회생 카드를 꺼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창업주 고(故) 전병수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 수년간 경영권 소송을 진행했는데, 지난 3월 대법원이 장남의 손을 들어주면서 분쟁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판결 직후 경영권을 잃은 차남이 대표로 있던 크린랲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경영권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최대주주는 지분 76%를 보유한 장남이었으나, 회생절차 개시로 주주 권한이 제한되면서 경영권 구도가 다시 불확실해졌단 분석이 나왔었다.

크린랲은 자산이 부채보다 많았을 뿐만 아니라 단기간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유동자산만 650억원에 달한다. 법원에 회생을 신청할 상황이 아니라는 평가다. 업계에선 경영권 분쟁이 회생 신청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다만 크린랲은 회생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