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 치료제 ‘정로환’과 염색약 ‘세븐에이트’로 유명한 동성제약(002210)의 오너 경영이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2세 경영자이던 이양구 회장이 보유 지분을 돌연 마케팅회사인 브랜드리팩터링에 넘기면서 최대주주가 변경된 것이다. 이번 결정은 회사와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카인 나원균 대표가 회사를 책임지게 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 최대주주가 덜컥 지분을 넘기면서 회사도 혼란에 빠졌다.
브랜드리팩터링은 코스닥 상장사인 셀레스트라의 백서현 대표가 이끄는 비상장 회사다. 셀레스트라는 암 진단 등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업체인데, 지난 감사 시즌에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의견 거절을 받아 상장폐지 대상이 됐다. 주주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최대주주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크다.
창립 70년이 가까운 동성제약은 정로환과 세븐에이트뿐 아니라 아토피·흉터 치료제 등 다양한 생활건강 제품을 내놓으면서 성장한 강소 제약사다. 창업주인 고(故) 이선균 회장에 이어 그의 막내아들 이양구 회장이 대를 이어 회사를 이끌었다.
올해는 3세 경영진이 전면에 나섰다. 이선균 전 회장의 외손자이자 이양구 회장의 조카인 나원균 전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대표로 선임됐다.
그런데 이양구 회장이 지분을 외부에 넘기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회사는 지난 21일 이양구 회장이 가진 회사 지분 14%(368만여주)를 브랜드리팩터링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해 최대주주가 변경된다고 23일 밝혔다. 이 회장은 지분을 120억원에 매각했는데, 경영권 프리미엄은커녕 당일 시가(3820원)보다 14.8% 낮은 1주당 3256원에 넘겼다.
이 회장 입장에서 굳이 지분을 팔아야 했다면, 블록딜(장외 대량매매)로 파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지분 매도 배경이 의심스러운 이유다.
동성제약은 브랜드리팩터링이 지정하는 인사가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사로 선임돼 경영권 이전이 종료되는 즉시 이 회장이 잔여 주식 86만5000여주를 인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3세 경영인이 회사를 맡게 된 상태에서 돌연 오너 일가가 외부에 지분을 넘기면서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회사의 영업 실적과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하면서 만성적인 적자 상태에 빠졌지만, 1986년생인 오너 3세의 등장에 내심 실적 개선을 기대했다.
회사 측은 “브랜드리팩터링은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나 대표와 전혀 연결이 없는 회사”라며 “지분 매각은 이 회장 개인적인, 회사와 협의되지 않은 결정이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회사도 확인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최대주주 브랜드리팩터링이 나원균 대표를 지원할 우호 세력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나원균 대표가 보유한 회사 지분은 4.1%에 불과하다. 당초 보유 지분은 1%였는데, 그나마 지난 2월 이양구 회장으로부터 주식 2.9%를 장외매수(1주당 4600원)하면서 지분이 소폭 늘었다.
브랜드리팩터링은 동성제약보다 체급이 작고 사업 연관성이 없는 마케팅 회사다.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백서현 대표가 의료 기기 회사 셀레스트라를 이끌고 있지만, 시너지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셀레스트라는 과거 사명이 클리노믹스였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벤처기업 1호로 2011년 설립된 클리노믹스는 암 진단과 유전자 검사 관련 의약품을 생산한다는 점을 내세워 2020년 기술특례로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지만, 게놈 기술이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했다.
백서현 대표는 창업자가 아니다. 창업 인사들은 지난해 회사를 개인(정준호)이 자금 대부분을 출자한 투자조합(제노투자조합1호)에 매각했다. 백 대표는 투자조합의 의사에 따라 셀레스트라 대표에 선임됐다. 셀레스트라는 지난해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계속기업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진단을 받은 뒤 상장폐지 대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