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코스피지수는 약보합(-0.07%)으로 마감했지만, NAVER(3.31%), 삼성생명(2.37%), 삼양사(1.85%), 한화(1.02%) 등은 주가가 올랐다. 업종도 각기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자사주 보유 비율이 높다는 것.

전날 이재명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기 위해 상법 개정 재추진과 함께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제도화 등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후보는 또 ‘쪼개기 상장’ 때 모회사 일반 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개인 투자자와 기업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단기적인 주가 상승을 기대하는 반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권 방어 등을 이유로 아직 소각하지 않은 기업이나 자회사 또는 계열사를 시장에 공개하려고 대기 중이던 기업은 좌불안석이다.

그래픽=양진경

◇자사주를 어찌할꼬…

작년 말 발효된 자사주 제도 개선 시행령에 따라 보통주 대비 자사주 비율이 5% 이상인 기업은 자사주 관련 공시 의무가 생겼다. 자사주를 가진 목적이 무엇인지, 매입·소각 계획 등이 구체적으로 있는지 등을 공시해야 하는 것이다.

올해 자사주 공시 대상으로 시가총액이 3000억원 이상인 기업 중에는 굵직한 대기업이 많다. SK(24.8%)와 LS(15.1%), CJ(7.3%) 같은 지주회사는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전통적으로 자사주를 많이 보유해 왔다.

상장사가 자사주를 사들이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일시적으로 줄기 때문에 일단 주가에 호재다. 다만 사들인 자사주를 소각해 완전히 없애야만 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주당순이익(EPS)이 늘어 주주 환원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이 후보가 자사주 소각을 제도화하겠다고 나오는 데도 이런 이유가 있다.

IBK투자증권 집계를 보면 올 1분기 자사주 소각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86% 늘어난 10조원을 기록했다. 권순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통상 1분기에 소각이 몰려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연간으로는 자사주 소각이 20조원쯤 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작년 전체 소각 규모(12조6000억원)를 크게 뛰어넘는다. 17조원 규모 자사주를 갖고 있던 ‘자사주 부자’ 삼성화재도 오는 30일에 5126억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자사주 의무 공시 대상 기업 중에선 보유 목적이 주주 환원이 아니라고 밝힌 곳도 있다. 이들은 주식 매수 청구권 등으로 자사주 취득 및 보유 의무가 발생했거나, 기업 성장 및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 기업들은 정부가 나서서 자사주 소각을 강제할 경우 급할 때 요긴하게 꺼내 쓸 비상금이 사라져버린다고 우려한다. 한 상장사 임원은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호 세력에 매각해 의결권을 살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로선 모조리 매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양진경

◇‘쪼개기 상장’ 대기 기업들도 비상

모회사가 기존 사업 부문을 분리한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에 대해서도 이 후보는 규제를 예고했다.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의 일반 주주에게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쪼개기 상장을 어렵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엔무브는 한국거래소에 코스피 상장을 위한 예비 심사를 청구했다가 지난 16일 퇴짜를 맞았다. 엔무브 상장으로 인한 모회사 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보호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SK이노베이션은 SK엔무브의 지분을 70% 갖고 있으면서 사업 영역이 겹쳐 시장에선 일찌감치 중복 상장 논란이 일었다.

자회사나 손자회사 등을 상장시켜 투자금을 마련하려던 기업들은 줄줄이 비상이 걸렸다. LS의 LS전선, LS MnM, LS엠트론, LS이모빌리티솔루션, SK의 SK에코플랜트, SK팜테코, SK스퀘어의 티맵, SK이노베이션의 SK온, 에코프로의 에코프로이노베이션 등 현재 시장에는 상장을 저울질하는 대기업 관련 회사가 수두룩하다. 다만 한 대기업 관계자는 “LG의 배터리 사업이 LG화학 내 사업부로 남았다면 화학업의 한 갈래로 저평가됐겠지만, 독립된 배터리 사업회사(LG에너지솔루션)로 온전히 가치 평가를 받은 덕분에 시장가치가 100조원까지 간 것”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중복 상장이 일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