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에 사는 현모(67)씨는 내년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손자의 학군을 고려할 때 현재 집을 자녀에게 증여하는 게 나은지, 아예 부동산을 팔아 자산을 현금화하는 게 나을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살던 집을 아들에게 전세로 임대하고 서울 외곽으로 이주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최근 강남구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매도 외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아들이 집을 사는 데 부족한 돈을 보태면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는 점도 고민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은퇴 이후 주거 양상도 달라지고 있다. 자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녀에게 부동산을 증여하거나 매도하고, 자녀와 임대차 계약을 하는 사례가 늘어남에 따라, 방법별 장단점과 주의 사항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녀에게 팔면 3억까지 증여세 없어
부모가 보유한 주택을 자녀에게 매도하면 합법인 절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경제력이 있는 자녀에게 집을 파는 경우, 세법상 가격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는 시가의 30% 또는 3억원 중 적은 금액을 적용해 가격을 낮춰 매수할 수 있다. 가족 간 부동산 거래를 하면 최대 3억원 할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부모 소유 주택을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시가 기준으로 자산을 이전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절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부모가 자식에게 주택을 파는 경우에는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 양도소득세는 시가를 기준으로 한다. 이때 부모가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을 충족하면, 양도소득세가 전액 비과세될 수 있다. 고가 주택(시가 12억원 초과)에 해당하면, 12억원을 초과하는 양도 차익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한다.
양도소득세를 시가보다 적은 가격으로 적용받는 방법도 있다. 가족 간 거래 가격을 시가의 5% 또는 3억원 중 적은 금액 이내로 조정하면 된다. 세법상 해당 금액만큼 할인하면, 시가로 양도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양도소득세가 줄어든 가격으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시가 20억원인 아파트를 가족 간 거래할 때, 시가의 5%인 1억원보다 적은 9000만원쯤 낮은 가격으로 거래하면 부모의 19억1000만원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내면 된다. 만일 3억원을 할인한 17억원으로 잡으면 양도 가액을 20억원으로 간주해 양도소득세를 계산하게 된다.
◇증여세 2억원 초과부터
과거에는 인프라가 갖춰진 부모의 거주지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본인은 수도권 외곽으로 이주해 전원생활을 즐기는 방식의 은퇴 생활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강남, 서초, 송파, 용산 등 주요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이 지역에서는 가족 간 전세로 자녀에게 거주지를 넘겨주는 방식이 불가능해졌다. 또 최근 고소득 은퇴자들은 거주지를 떠나지 않고, 의료·여가·사회 활동을 지속하며 생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기혼 자녀 집 인근에 살며 양육을 돕고 함께 생활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처럼 부모 주거지 인근에 집을 마련하려는 자녀에게 부족한 자금을 지원할 경우 증여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가족 간 금전 거래는 증여로 추정되므로, 타인과 하는 거래처럼 절차를 갖춰야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차용증을 작성할 때는 이자율과 만기 등 실질적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실제로 이자를 지급하고 수취한 내역도 준비해야 한다. 세법상 가족 간 금전 거래의 적정 이자율은 연 4.6%다. 만약 연리 2.0%로 차용증을 작성했다면, 차액인 2.6%에 해당하는 이자 금액은 자녀가 이익을 본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를 물린다.
이때 현행 법령에 따라 증여 재산 가액 산정 시 이자 금액 1000만원까지는 세금이 없다. 예를 들어 연 4.6% 이자율 기준으로 2억원가량을 빌리면 이자가 920만원이기 때문에 면세 기준에 부합한다. 구체적으로는 2억1700만원 이내에서 가족 간 대여를 하면 증여에 해당하지 않는다.
한편 부모가 자녀에게 이자 명목으로 송금을 받았다면 종합소득세 신고 시 이자소득세를 함께 신고해야 한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주택을 매입할 경우, 가족 간 차용 계약을 통한 자금 조달 계획서를 제출하면 한국부동산원에서 소명 요청을 받을 수 있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증여세 폭탄’ 주의
부모와 자녀 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는, 제3자와 거래하는 것처럼 적법한 절차를 철저히 준수해야 증여세 부과를 피할 수 있다. 우선 전세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부동산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직거래로 계약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다면 중개인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신뢰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전세금은 반드시 시가를 기준으로 설정해야 한다. 시세보다 과도하게 높거나 낮은 전세금으로 계약할 경우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다.
특히 임대차 계약 이후에는 부모와 자녀가 같은 주소에 거주할 수 없다. 전입신고와 확정일자 부여 절차도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계약이 종료될 때에는 임차인인 가족에게 전세 보증금을 정확하게 반환해야 한다. 최근에는 국토교통부가 실거래 조사를 통해 가족 간 전월세 거래를 통한 편법 증여 사례를 적발하고 있으며, 의심 사례는 국세청에 통보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