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시작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신경전이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RA) 시장으로 번질 조짐이다. 미래에셋운용이 ‘종합 운용사 최초’ 타이틀을 걸고 서비스 출시 기념 간담회를 준비해 왔는데, 행사 바로 전날 삼성운용이 서비스 개시 소식을 먼저 알려서다.
삼성운용은 금융당국에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서비스를 신청한 17개 사업자에 포함되진 않는다. 정확히는 쿼터백자산운용이 신청자고, 삼성운용은 쿼터백과 협업 관계다. 미래에셋은 사업 주체도 아닌 삼성이 자신들의 행사 직전에 의도적으로 고춧가루를 뿌렸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14일 삼성운용은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운용사 쿼터백자산운용과 공동 소유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삼성증권(016360)을 통해 로보어드바이저 일임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삼성운용은 “그간 축적해 온 퇴직연금 운용 노하우, 마케팅 역량을 바탕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더 많은 퇴직연금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 소식을 접한 미래에셋운용에서는 “삼성운용이 일부러 14일에 맞춰 서비스 출시 사실을 공개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미래에셋운용은 바로 다음날인 15일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출시를 알리는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삼성운용 측은 “우연의 일치일 뿐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미래에셋운용 측은 “고의성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미래에셋운용이 민감하게 반응한 건 15일 행사에서 ‘종합 운용사 최초의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란 점을 강조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시장은 지난달 첫 주자 파운트투자자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비스 경쟁에 돌입했다. 미래에셋은 전체 1호는 파운트투자자문에 내줬지만, 종합 운용사 중 1호는 자신들이란 사실을 강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삼성운용이 전날 먼저 서비스 개시 사실을 공개하며 선수를 친 것이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쿼터백은 자산운용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핀테크 업체 성격이기 때문에 미래에셋으로선 ‘종합 운용사 중에선 우리가 처음 출시한다’는 점을 널리 홍보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의 신경전은 최근 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때 국내 ETF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삼성운용의 코덱스(KODEX) 브랜드가 미래에셋운용의 타이거(TIGER) 브랜드에 맹추격을 당하면서다. 두 회사는 ETF 총보수 인하 공방을 주고받으며 치킨게임을 벌이다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으로부터 적당히 하라는 경고 메시지까지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