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협회가 공모펀드 직상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처음 직상장되는 공모펀드 수가 당초 계획한 30여개보다 적은 10여개에 그칠 전망이다. 기초자산이 ‘해외주식’인 공모펀드는 직상장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달러화 대비 원화(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진 게 해외주식 공모펀드를 직상장에서 일단 제외하기로 한 배경이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투협과 자산운용업계가 당초 직상장을 추진한 공모펀드는 30여개였다. 기초자산이 채권 또는 해외주식인 펀드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해외주식형은 직상장 목록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해외주식형 펀드가 제외되면 초기 직상장되는 공모펀드 수는 10여개로 확 줄어든다.
해외주식형 펀드의 직상장이 유보된 이유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원·달러 환율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전 세계에 상호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글로벌 관세 전쟁이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데, 시장에선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공모펀드 직상장과 관련해 “최근 외환시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환 헤지(Hedge·위험회피)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해외주식형은 일단 제외하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며 “처음 도입하는 제도인 만큼 안정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2023년 취임한 서유석 금투협회장은 침체된 공모펀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공모펀드 직상장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했다. 공모펀드를 상장지수펀드(ETF)처럼 한국거래소를 통해 실시간 거래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간 공모펀드는 ETF와 비교해 거래가 번거롭다는 점이 장애물로 꼽혀 왔다. 이에 설정액 500억원 이상 공모펀드에 상장 클래스(X클래스)를 신설해 ETF처럼 실시간 거래하는 길을 터주겠다는 게 공모펀드 직상장 제도의 골자다. 올해 2분기(4~6월) 중 X클래스 상품이 나올 예정이다.
다만 직상장되는 공모펀드 수가 줄어도 유동성공급자(LP)가 부족하다는 우려는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LP로 나서기로 한 증권사는 미래에셋증권(006800)과 한국투자증권, 메리츠증권, SK증권(001510) 등 네 곳이다. LP는 직상장한 공모펀드의 호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LP로 나서는 것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직상장 공모펀드는 총설정액 500억원 이상과 함께 X클래스 설정액 최소 기준 70억원도 충족해야 한다. 기존 공모펀드 투자자가 X클래스로 갈아타 70억원을 웃돌면 문제가 없지만, 부족하면 LP가 메꿔야 한다.
만약 15개 공모펀드가 직상장했는데, 기존 투자자의 X클래스 전환이 없으면 이들 4개 LP가 총 1050억원을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LP로 참여하려면 금융규제 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 심사도 통과해야 해 단기간에 LP를 늘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운용사들은 LP의 설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존 투자자에게 X클래스 전환을 설득하고 있다. X클래스가 기존 A클래스, C클래스보다 판매보수 수수료가 적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중소 자산운용사 대표는 “LP와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