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퇴직연금보험 수익률을 공시할 때 사업비를 제외하고 발표하는 것은 증권·은행업종에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펀드 수익률엔 자산운용사가 지급받는 수수료가 녹아 있는데, 보험사는 사업비를 아예 빼고 공시하고 있어 투자자들이 오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처럼 대외 변수 때문에 증시가 출렁일 때는 보험사의 연금보험 수익률이 유독 높아 보이는 착시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보험사는 퇴직연금 가입자에게 ‘사업비’란 이름의 비용을 선취하는데, 자사 연금보험 수익률을 홍보할 때는 물론 퇴직연금 비교공시 사이트에도 이 사업비를 반영하지 않은 수익률을 공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증권·은행 등 다른 업권 판매사들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금융감독원도 공시 방법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안내된 퇴직연금 수수료율 화면. 공시에서는 보험사 상품에 부과하는 사업비에 대한 항목은 반영돼 있지 않다./통합연금포털 캡처

13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 퇴직연금 비교공시에 따르면 국내 주요 보장성 퇴직연금 상품의 5년 기준 수익률은 은행·보험사·증권사 모두 2% 중후반대로 비슷했다. 운용 수수료도 금융기관 종류와 관계없이 1% 미만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공시만 봐서는 판매사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공시된 수치에는 함정이 있었다. 보험사 상품에만 붙는 ‘사업비’란 항목 때문이다. 사업비는 보험 사업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다. 가입자가 낸 원금은 사업비를 선취한 후 나머지 금액을 상품으로 운용한다. 사업비는 통상 10~20%대 수준이다.

현재 금감원 퇴직연금 공시에서는 사업비를 제외한 금액을 납입 원금으로 계산한다. 여기에 공시 수익률을 적용하면 수익금은 실제 납입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보다 줄어든다.

증권사나 은행은 사업비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 두 업권 상품에도 운용관리·자산관리 수수료는 붙지만, 이는 보험사도 함께 부과하는 항목으로 모두 동일하게 공시하고 있다. 모든 퇴직연금 상품 수익률과 수수료를 같은 기준으로 공시하다 보니 공시 자료에는 사업비만 반영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업비가 10%인 보험사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3%라고 가정해 보자. 공시에는 수익률 3%로 나오더라도 4~5년 동안은 사실상 수익률이 없을 수 있다. 사업비를 감안하면 원금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공시만으로는 이를 알 길이 없다.

비교공시만 믿고 증권사·은행과 비슷한 수익률을 기대한 사람이 보험사 상품을 택한다면, 이는 고스란히 가입자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퇴직연금은 오랫동안 가입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보험사 상품 공시 수익률이 높다면 장기적으로 이익을 낼 순 있다. 하지만 공시 사이트 자체가 정확한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감원은 이 문제를 파악 중이라고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이전부터 인지했고, 내부적으로 공시 개선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며 “금융회사들과 상의해 실질적인 수익률을 알려줄 수 있는 공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