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1분기 영업 성적을 발표하는 실적 시즌이 시작됐지만,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예측 불가 관세 정책 때문에 증권업계 종사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실적에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미국이 부과하겠다고 밝힌 관세 수준이 워낙 공격적이라 세계 금융시장이 연일 급등락하고 있다. 실제로 높은 수준의 관세가 부과되면 웬만한 기업도 한 분기 영업이익을 관세로만 날릴 수 있고, 미국 경제조차 심각한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주식시장에서는 상황이 이런데 1분기 실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자조가 나온다.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 때문에 2분기 실적 또한 전망이 어려운 상황이다.

관세로 인한 실적 왜곡도 크다. 예를 들어 2분기 관세를 우려해 1분기에 선주문한 물량 때문에 무늬만 어닝 서프라이즈인 경우가 나타날 수 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이 이런 케이스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전광판. 이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정책을 발표한 이후 첫 영업일로, 국내 증시는 5% 이상 폭락했다./연합뉴스

지난 7일 LG에너지솔루션(373220), LG전자(066570), 8일 삼성전자(005930)가 올해 1분기 실적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국내 기업들의 실적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해 연말 갑작스러운 계엄 사태 이후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는데, 어려운 환경에서 지난 1분기 기업들이 얼마나 탄탄하게 사업 기반을 유지했는지가 이번 실적 시즌의 관전 포인트였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폭탄에 가까운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국이 무역 상대국에 부과하겠다는 상호 관세율이 당초 예상한 평균 10%대를 훨씬 웃도는 20%대로 정해지면서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고 원가를 절감해 수익성을 끌어 올려도 판매가를 높이지 않는 이상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 한방에 적자를 봐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실적이 아니라 트럼프의 입으로 향했다. 미국이 결정할 관세 정책에 따른 여파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 실적이 주가에 주는 영향이 미미해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시장 전망을 웃도는 ‘어닝서프라이즈’를 발표했다. 보통 상황이었다면 삼성전자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겠지만, 삼성전자 주가는 9일까지도 52주 최저가 수준인 5만3000원에 머물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대한 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발표한 뒤인 10일에야 삼성전자 주가는 5만6400원을 회복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1분기 실적에 이미 미 관세 정책에 따른 영향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분기는 실제 관세가 부과되기 이전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찌감치 강도 높은 관세 정책을 예고해 온 만큼 지난 실적에 원래대로라면 2분기에 반영됐을 매출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직후부터 주요 업체들이 미리 재고를 쌓아 놓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수요를 미리 당겨쓴 상황이 1분기 어닝서프라이즈로 이어졌다면 1분기 실적 개선이 주가에 반영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앞으로 실적을 전망하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앞으로도 증시 방향이 기업 실적보다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에 제시한 2분기 전망에 대한 전제 조건들은 모두 깨졌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1분기 호실적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됐고, 더 중요한 것은 관세 불확실성을 어떻게 반영하는 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에는 앞으로 투자 방향을 묻는 펀드매니저들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다만 애널리스트들은 관세 정책의 향방을 지켜봐야 한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정원석 IM증권 하이테크부 부장은 “펀드매니저들이 2분기 이후 실적을 문의하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관세의 불확실성으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가령 이차전지에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을 때, 이 부담을 배터리 기업이 감내할지, 완성차 업체가 부담할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전쟁으로 대혼란의 시기가 왔다”며 “이런 상황에 1분기 실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만 관세 부과에 따른 영향과 상황이 잠잠해진 후 바라볼 부분에 대해 고민할 가치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