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블랙먼데이 때 예상과 달리 국내 증시의 신용융자가 줄어들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발표 여파로 미국과 국내 증시가 급락했지만 신용거래는 이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식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주식시장에서는 반대매매 등의 방식으로 신용이 ‘털려야’ 증시가 반등한다는 격언이 있다.

견고한 신용 융자가 아직 바닥이 멀었다는 신호일지, 아니면 예전과 달리 가격이 많이 빠졌기 때문에 들어온 ‘스마트 머니’일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러스트=챗GPT·달리3

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융자잔고는 지난 7일 기준 16조9577억원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9조8077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7조1499억원이다. 7일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827억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일일 신용융자잔고는 지난 2월부터 줄곧 17조원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신용거래는 초단기 외상인 미수거래와 달리 종목별로 30~90일 동안 주식 매매에 필요한 일부 자금을 증권사가 일정 이율로 빌려주는 것이다. 통상 하락장이 전망되면 투자자들은 빚투 규모를 줄인다. 7일 증시가 큰 폭 하락하고도 빚투 규모가 크게 줄어들지 않은 것은 투자자들이 증시 반등을 기대하고 신용거래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미국과 국내 증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도 높은 관세 정책 발표 이후 폭락했다.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나스닥 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가 각각 11.4%, 10.7% 하락했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도 7.1%, 4.9%씩 내렸다. 다만 8일에는 국내 증시가 소폭 반등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그간 낙폭이 컸던 대형주를 중심으로 신용거래가 크게 늘었다. 코스콤 체크에 따르면 4월 들어 삼성전자(005930)의 신용거래액이 252억원 늘며 순증가액 1위를 차지했다. 잔고금액도 7000억원을 넘겼다. SK하이닉스(000660)(133억원), LG화학(051910)(58억원), 현대로템(064350)(54억원), 현대차(005380)(51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코스닥 시장에서는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정치인 관련 테마주에 빚투 물량이 집중됐다. 같은 기간 코스닥 신용거래 증가액 1위는 이재명 정책 수혜주로 분류되는 핀테크 업체 코나아이(052400)(42억원)였다. 이 대표의 고향인 경북 안동에 본사를 둔 동신건설(025950)도 7억5000만원, 홍준표 대구시장 테마주인 경남스틸(039240) 역시 3억2000만원 규모로 신용거래액이 늘었다.

증권가에서도 이번 급락 사태 이후 회복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수 있으나 또다시 급락장이 나타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다만 글로벌 관세 전쟁, 정치 불안정 등 증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아직 남아있는 만큼 투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재원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호관세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소셜미디어(SNS)·기자회견 발언과 중국의 맞대응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 없어질 이슈는 아니다”라면서도 “현재 국내 증시 밸류에이션(기업 가치)을 보면, 관세 노이즈가 축소되면 저가 매수세 유입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사례를 제외하면 일정 수준의 여진은 진행될 수 있지만 기존 속도와 같은 급락이 추가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시점에서는 적극적인 포지션 축소보다는 단기적이나마 저점 확인 시도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는 점을 활용해 수익률 개선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