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대기업에서 정보 통신(IT)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박모(32)씨는 올 초부터 월급의 60% 이상을 연금저축 계좌와 IRP(개인형 퇴직연금)에 넣고 있다. 최근에는 은퇴 시점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펀드인 TDF(타깃 데이트 펀드)도 공부 중이다. 안정된 직장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그는 20대 때인 2019년 주식 투자를 시작하고 바로 코로나 시기의 출렁이던 시장을 경험하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됐다. 박씨는 “코로나 시기에 가장 안정적인 수익률을 낸 투자처가 주가지수 ETF였다”며 “그 후 지금은 회사를 열심히 다니면서 월급을 받고, 그중 일정액을 연금에 넣어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게 최고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MZ세대 연금 상품 관심 높아져
MZ세대 투자자들이 은퇴 시기가 가까워져야 연금에 관심을 두던 이전 세대와 달리 20·30대부터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연금 상품에 관심을 두고 있다. 7일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자사 고객 중 작년 IRP 가입자의 2022년 대비 증가율을 연령대별로 봤더니 20대가 201%로 가장 높았다. 그 뒤를 10대(140%), 30대(76%)가 이었다. IRP는 노후 자금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관·운용할 수 있는 계좌다.
또 은퇴 후 노후 생활을 준비하기 위해 가입하는 상품인 연금저축펀드는 같은 기간 10대의 증가율이 253%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30대(71%), 40대(53%)가 이었다. 이동근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연구원은 “몇 년 전만 해도 연금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과 이해도가 낮았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습득하면서 30대 가입자가 2022년 한 해 수만 명대에서 작년 십 수만 명대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현재 2030세대는 어렸을 때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학창 시절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며 이전 세대보다 노후 준비에 빨리 눈을 뜬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부모 세대의 은퇴 문제나 경제적 어려움을 가까이서 보며 “나는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는 것이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 이슈를 보며 ‘나는 국민연금을 제대로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다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2030세대는 정보 접근성이 좋고, 재테크나 자산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보니 유튜브·블로그 등을 통해 연금저축, IRP 같은 절세형 금융 상품 정보도 쉽게 접하고 실천한다”며 “정년 보장이 어렵고 자영업·프리랜서 비율도 많아지다 보니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려는 심리가 강해 연금을 일종의 자기 미래에 대한 보험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작년 말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KB자산운용의 연금 세미나에도 20·30대 참석자가 3분의 1이 넘었다. KB자산운용 관계자는 “그동안 기관 투자자 대상 세미나를 꾸준히 열다가 개인 투자자 대상 오프라인 세미나는 처음이었는데 젊은 층 신청자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강연자로는 30대의 연금 투자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튜버 등이 나왔다.
◇2060년 은퇴를 준비하는 20대들
글로벌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은퇴 시점에 맞춰 자동으로 자산 배분을 조정해 주는 펀드 TDF의 젊은 층 가입자 수도 증가 추세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최근 1년간 TDF 상품 증감액을 보면, 은퇴 시점을 2060년으로 잡는 상품이 136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2050년(991억원), 2055년(696억원) 순이었다. 2060년을 은퇴 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현재 가입자의 나이를 20대로 추정할 수 있고, 2050년과 2055년이라면 30대로 추정할 수 있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지금부터 20~35년 후에 은퇴할 것을 가정하고 가입하는 것이라, 젊은 층이 은퇴 이후를 대비한 연금 투자에 관심이 많다는 걸 방증한다”고 말했다.
최근 TDF를 향한 관심이 증가하자 한투운용은 실시간 매매가 가능한 ETF 형태의 TDF를 출시하기도 했다. 한투운용 관계자는 “TDF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커져, 보다 접근이 쉽도록 ETF 형태로 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