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승승장구했던 서학개미(미국 주식 개인 투자자)의 투자 수익률이 올해 들어서는 미국 증시 급락과 함께 악화하고 있다. 서학개미가 지난해 12월 고점 이후 순매수한 상위 50개 종목 중 44개(88%)의 평균 평가수익률이 마이너스(-)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 하락에 평균 매수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이른바 ‘물타기’를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미국 나스닥종합지수가 최고점을 찍었던 작년 12월 16일(결제일 기준 18일)부터 이달 3일(결제일 기준 7일)까지 국내 투자자가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테슬라다. 테슬라 주식 28억458달러(약 4조100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테슬라 주가는 463.02달러에서 267.28달러로 곤두박질쳤다. 현재 주가는 233.29달러까지 밀리며 반 토막 났다. 손실 투자자가 급증했다. 네이버페이 ‘내자산 서비스’와 연동한 테슬라 투자자 30만7553명의 평균 평가 수익률은 -11.51%다.
테슬라 일일 주가 상승률을 2배로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TSLL’ 투자자의 평균 평가 수익률은 -55.48%까지 추락했다. 국내 투자자는 TSLL도 최고점 이후 19억6869만달러(약 2조90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테슬라 주식 기반의 커버드콜 ETF인 ‘TSLY’ 투자자의 평균 수익률도 -42.03%로 부진했다.
국내 투자자 사이에서 ‘속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ETF ‘SOXL’도 투자자 3만959명의 평균 수익률이 -65.13%로 부진했다. SOXL은 미국 반도체 지수의 일일 상승률을 3배로 따라간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 종목 역시 중국 딥시크 쇼크와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를 피해 가지 못했다. 엔비디아 주가 일일 상승률을 두 배로 추종하는 ETF ‘NVDL’이나 엔비디아 주식 기반의 커버드콜 ETF ‘NVDY’ 역시 투자자 대다수가 평가 손실 구간에 있다.
순매수 종목 중 가장 손실률이 높은 종목은 수소 연료전지 기업 플러그 파워였다. 플러그파워 투자자 7829명의 평균 평가 수익률은 -84.7%였다. 플러그 파워처럼 주가가 1달러 안팎인 아브 로보틱스나, 리졸브 AI도 평균 평가 손실률이 60% 이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기대하며 투자에 나선 서학개미도 웃지 못했다. 가상자산과 비트코인 대장주로 꼽히는 마이크로스트래티지 관련 ETF는 투자자의 평균 평가 손실률이 높았다. ETHU -75.76%, MSTX -69.39%, MSTU -55.48%, CONY -47.31%, BITU -32.33% 등이다. 이밖에 트럼프 대통령의 천연가스 정책 관련 종목인 비스트라 에너지를 비롯해 ‘KOLD’ ETF도 투자자 대부분이 평가 손실 상태다.
이밖에 슈퍼마이크로 컴퓨터와 팔란티어 주가 일일 상승률을 각각 2배로 추종하는 SMCX나 PLTU 도 평균 평가 손실률이 30%를 웃돌았다.
미국 뉴욕증시의 부진이 워낙 큰 탓에 레버리지 상품이나 변동성이 큰 기술주뿐 아니라 고배당주, 주가지수 추종 ETF도 평균 평가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뒤집혔다. ‘SCHD’를 비롯해 ‘VOO’, ‘QQQ’ ‘SPY’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투자자가 평가 이익을 기록 중엔 오라클과 메타 플랫폼스, 알파벳이 있었다. 세 종목도 전 고점 대비 주가가 30%가량 하락했지만, 장기 투자자들의 평균 매수단가가 낮았던 덕분에 평가 손실 구간에 들어서지는 않았다. 이밖에 금 관련 ‘GLD’, 단기 회사채에 투자하는 ‘SPSB’, 파킹형인 ‘SGOV’ 등의 ETF도 평균 수익률이 플러스였다.
서학개미의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ETF들도 지난해엔 높은 수익률을 자랑했지만, 올해 본격화한 하락 국면에선 낙폭이 더 컸다. Kodex 미국서학개미와 ACE 미국주식베스트셀러는 고점 대비 30% 안팎의 하락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종목은 국내 투자자가 많이 보유한 미국 주식 비중을 늘린 ETF인데 나스닥100지수 하락률(21.6%)이나 S&P500지수 하락률(17.65%)보다 부진하다.
강세장에선 서학개미의 공격적 투자가 성과를 냈지만, 하락장에 진입하면서 헤지(Hedge·위험 회피) 없는 투자 스타일의 약점이 드러났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관건은 급락장을 만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변화가 있을지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반등하려면 빠르게 미국과 관세 협상에 돌입한 일본이나, 대화의 여지를 열어둔 유럽연합(EU)과 유의미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며 “상호 관세를 유예하거나 ‘파월 풋(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하락장을 방어해 주는 것)’ 등의 소식을 기다리면서 차분히 시장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