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최강의 IT 기술력을 자신하던 키움증권이 이틀 연속 발생한 주식 주문 체결 지연 사태로 체면을 구겼다. 대대적인 점검을 통해 현재는 시스템이 정상 가동 중이지만,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를 오류에 키움증권 내부적으로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매매 타이밍을 놓친 투자자의 불만 민원도 1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은 복구됐어도, 여진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가 터진 시점이 하필이면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창업주의 장남 김동준 키움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가 키움증권 사내이사로 합류한 직후다. 키움증권(039490)이 2세 경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자마자 김 대표의 위기 대응 능력도 시험대에 오르는 모양새다.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옛 본사 앞으로 직장인이 걸어가고 있다. 현재 키움증권 본사는 인근 TP타워로 이동했다. / 뉴스1

◇ 연이틀 오류에 민원 1만건 폭탄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3~4일 키움증권 트레이딩시스템(MTS·HTS)에서 주식 주문 체결 지연 사태가 발생한 이후 7일까지 VOC(고객의 소리)가 1만건 넘게 쏟아진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주식 매매 타이밍을 놓친 것에 대한 보상 관련 문의로 알려졌다. 키움증권은 “주문 지연 등으로 손실이 발생한 경우 보상 기준과 절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신속히 검토하겠다”고 했다.

지난 3일과 4일 키움증권 시스템에서는 주문 처리 지연 현상이 2거래일 연속으로 나타났다. 키움증권은 거래량이 갑자기 급증한 탓이라며 “정상화했다”고 안내했으나, 공지 이후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결국 키움증권은 주말(5~6일) 동안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7일 코스피·코스닥지수 모두 5% 넘게 급락하고, 유가증권시장에선 올해 첫 매도 사이드카(선물 가격 급락 시 프로그램매매 호가 효력을 5분간 제한)까지 발동했다. 다행히도 키움증권 시스템에서는 주문 체결 지연과 같은 오류가 또다시 발생하진 않았다.

키움증권은 4월 5~6일 시스템 점검을 이유로 서비스 중단을 안내했다. / 키움증권 MTS 화면 캡처

그러나 키움증권 분위기는 여전히 뒤숭숭하다. 언제 또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탓이다. 언제든 이번과 같은 주문 폭주로 접속 서버에 병목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키움증권 실무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지연 보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키움증권은 모회사가 IT 기업인 다우기술인 만큼 그간 자신들의 IT 경쟁력에 자신감을 드러내 왔다. 지난달 대체거래소 출범에 따른 자동주문전송시스템(SOR) 구축 때도 코스콤이나 넥스트레이드가 만든 SOR을 택한 다른 증권사들과 달리 키움증권은 자체 개발 시스템을 유일하게 채택했다. SOR 자체 구축을 주도한 키움증권의 IT 담당 임원 인터뷰가 일부 매체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시스템 불안을 가장 심하게 겪으면서 민망함도 커졌다.

◇ “오너 2세 김동준 위기 대응 능력 시험대”

키움증권은 전체 매출에서 리테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증권사다. 브로커리지(위탁매매) 경쟁력을 토대로 성장해온 만큼 주식 거래 시스템 불안은 키움증권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키움증권은 지난해 해외주식 거래대금 증가에 따른 해외주식 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급증에 힘입어 3년 만에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재입성했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창업자 겸 전 회장. / 키움증권

시장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최근 키움증권 사내이사로 합류한 오너 2세 김동준 대표의 위기 대응 역량이 평가받게 될 것이란 말이 나온다. 키움증권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TP타워 본사에서 제26기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김익래 전 회장의 장남인 김 대표를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 대표는 키움PE와 키움인베스트먼트 대표를 겸직하고 있어 키움증권에서는 비상근 사내이사로 이사회 활동에만 참여할 예정이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의 겸직 금지 규정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는 김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을 다우키움그룹 2세 경영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다.

1984년생인 김 대표는 미국 남가주대(USC)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코넬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삼일회계법인·사람인·다우기술·다우데이타 등을 거쳤다. 키움증권이 해외 진출 강화를 목표로 삼은 만큼 미국 시장 전문가인 김 대표의 역할도 점점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고위 관계자는 “키움증권은 브로커리지 영역에서 신뢰를 잃으면 다른 어떤 증권사보다 데미지가 클 수밖에 없는 증권사”라며 “투자자들은 (키움증권이) 피해자 보상과 시스템 안정화에 얼마나 진심으로 노력하는지 주시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