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주가 조작 등 자본시장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의 책임을 강화할 방침이다. 증선위가 결정한 제재 내역을 보다 상세하고 적극적으로 대중에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증선위는 시세 조종과 같은 불공정거래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정하는 금융위원회 산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증선위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금융감독원이 제안한 제재보다 더 세게 하거나 , 반대로 더 약하게 때리기도 했다. 이번 개선으로 증선위의 조치안이 시장에 공개되면서 감경하는 데에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다만 금융위는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이들의 명단을 시장에 공개하는 방향에는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증선위에서 제재를 받은 당사자와 법원에서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있어 금융위가 자본시장법 위반 명단을 공개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2일 금융 당국이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국정감사결과 시정 및 처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위는 올해 상반기 중 불공정거래에 대한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할 계획이다. 불공정거래인 시세 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부정 거래의 구체적인 사례와 그 유형을 시장에 신속하게 알리기 위해서다.
지금은 불공정거래에 대한 증선위의 결정이 보도자료를 통해서 대중에 알려지고 있다. 혐의 내용과 조치 의의, 향후 계획 등이 언론을 통해 발표된다. 이후 해당 내용은 증선위 회의가 끝난 후 두 달 뒤에 금융위 홈페이지 한켠에 공개돼 왔다. 조회수는 1만~3만회 수준이다.
홈페이지가 개설되면 증선위의 결정이 보다 상세하게 공개될 전망이다. 증선위는 특정 사안의 자본시장법 위반 정도를 판단하고 과태료와 과징금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감면이나 가중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면 재량으로 제재 수위를 내리거나 더 높일 수 있다. 이번 개편으로 증선위의 조치 사항이 공개되는 만큼 과태료·과징금 등을 깎는 방식의 재량권 사용은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위는 “비정상적인 주가 폭등 등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증선위 조치의 책임성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달 23일부턴 불공정거래에 강화된 벌금이 적용된다. 이는 금융 당국이 자본시장을 선진화하겠다며 2년 전부터 관련 법을 개정한 결과다. 과거 시세를 조종하는 등의 범죄를 저지르면 부당이득액의 3~5배를 토해내야 했는데, 앞으로는 과징금 수준이 부당이득액의 4~6배로 늘어난다.
제재 수단도 다양화된다. 현재까지는 주가를 조작해도 과징금 외에 이렇다 할 행정적 제재 수단이 없었다. 앞으로는 금융위가 범법자의 증권이나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의 신규 거래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상장사와 은행·보험·상호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회사 등 금융회사의 임원 선임과 재임도 최대 5년까지 막을 수 있다. 불공정거래 행위에 동원된 계좌는 최장 1년간 동결할 수 있다.
다만 금융 당국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 시장에서 부당 이득을 챙기는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금융감독원은 국회에 “위반자 명단 공개 시 향후 수사와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서 금융위와 협의한 후에 도입 여부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법인이나 개인 금융 거래 정보가 악용될 소지가 있고, 법원에서 혐의가 확정되기 전에 신원을 밝힐 수는 없다는 뜻이다. 지금도 증선위 의사록은 혐의자의 이름과 법인명을 익명으로 처리한다.
3년 전만 해도 금융위는 제재의 실효성을 근거로 불법 공매도(무차입 공매도) 행위자의 사명과 이름을 홈페이지에 게시하겠다고 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워낙 뜨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명단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는 최근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매도 주문을 낸 글로벌 투자은행(IB)인 BNP파리바와 HSBC를 익명 처리해 불법 공매도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