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관세가 발표되자, 국내 증권가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평가가 나왔다. 관세로 인해 미국의 경기 둔화 압력이 높아지면서 주식 시장 역시 위축될 것이란 게 그 근거다. 또 관세를 부과받은 나라들이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주요 품목 중 하나가 자동차인 만큼 관련 업계는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자동차를 콕 찍어 “어떤 경우는 적국보다 우방이 더 나쁘게 우리를 대우했다”고 직격했다. 반도체는 상호관세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IT 디바이스는 그렇지 않아서 별 효과를 못 입을 것으로 보인다.
3일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보편관세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까웠던 발표”라며 “정책이 공개된 이후 모든 지표는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리 시각으로 이날 새벽 미국은 주요 무역상대국에 기본관세 이상의 상호관세를 공개했다. 국가별로 보면 베트남 46%, 태국 36%, 중국 34%, 대만 32%, 인도네시아 32%, 한국 25%, 일본 24%, 말레이시아 24%, 유럽연합(EU) 20%, 영국 10%다.
조 연구원은 “1930년 스무트 홀리법 시행 이후 미국 평균 실효 관세율은 20%까지 상승했다”며 “이번 트럼프 관세 정책으로 미국 평균 실효관세율은 28%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100년 만에 가장 큰 폭의 관세율 인상이다. 영국과 EU는 즉각적인 보복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강경 대응 중이다.
관세로 인해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면 기업들의 실적 전망치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2018년 트럼프 정부 1기 때 무역 갈등이 확대되면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고점보다 16% 떨어진 바 있다. 조 연구원은 “멀티플(기업가치배수) 축소에 따라 주가 하방 압력이 높아지겠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자동차 생산 업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5%의 관세가 부과되면서다. 지난해 기준 현대차의 국내 수출 중 미국향은 54%다. 기아 역시 이 비율이 38%로 낮지 않다.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개정되면서 현대차와 기아가 국내 수출을 미국 중심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당장 미국향 물량을 생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가 완성차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베트남(상호관세 46%), 인도(26%), 인도네시아(32%)는 한국(25%) 또는 수입산 자동차 관세(25%)보다 상호관세율이 높다. 한국보다 상호관세율이 낮은 EU(20%), 브라질(10%), 터키(10%), 싱가포르(10%) 등에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하이브리드(HEV), 제네시스 등의 생산 라인이 없다.
문용권 신영증권 연구원은 “상호관세와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국가별 협상을 통해서 조율하지 않는 한 미국 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관세 회피를 위해 미국 현지 생산을 늘릴수록 국내 공장의 미국향 수출은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대응은 글로벌 자동차 생산 5위에서 7위로 떨어진 한국 자동차 생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번 대규모 상호관세에서 반도체는 예외 됐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차용호 LS증권 연구원은 “IT 디바이스에 대한 관세는 면제되지 않았다”며 “대부분의 세트 조립이 중국,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과 같은 인건비가 저렴한 국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국 수요 측면에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다만 추후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가 하향 조정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발표 시점은 오는 9일로 시간이 남아있다. 황산해 LS증권 연구원은 “이달 2일 해소될 것으로 기대됐던 불확실성은 9일까지 연장됐다”며 “현재 시장이 반응하는 우려보단 점차 협상이 진행되며 불확실성이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