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하락, 코스피 휘청 - 다음 주로 예정된 트럼프발 관세 전쟁, 공매도 재개와 같은 불확실성 요인들이 28일 코스피를 2600선 밑으로 끌어내렸다.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1.89% 하락해 2557.98로 장을 마친 코스피가 표시되어 있다.

“아직도 탈출 안 하셨나요? 아무리 희망 회로를 돌려도 이거 그냥 죽은 주식입니다.”(신영와코루 주주토론방)

“현금 2조 쌓아놓고도 배당 성향은 1.5%? 상장하면 안 될 기업이었다. 차라리 자진 상폐 해버려라.”(태광산업 주주토론방)

정부가 지난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을 타파하겠다며 이른바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시동을 걸었지만, 밸류업은 고사하고 국내 상장사들의 평가 가치는 더욱 뒷걸음질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평가지표인 PBR(주가순자산비율)이 0.2배에도 못 미치는 상장사는 1년 전에 비해 두 배 넘게 늘었다.

◇”PBR 0.1배요? 너무한 것 아닙니까?”

28일 본지가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을 통해 국내 상장사 2347곳의 PBR 변화를 살펴본 결과, 76%인 1785곳의 PBR이 1년 새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PBR이 1 미만인 기업의 비율도 늘어났다.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기 직전 거래일인 작년 2월 23일 기준 PBR이 1에 못 미치는 기업은 1088곳으로 전체의 45.7%였지만, 이달 26일 기준으론 1346곳이 여기 해당했다. 비율은 54.6%로 훌쩍 뛰었다.

그래픽=백형선

PBR은 주가수익비율(PER)과 함께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치를 평가받는지를 재는 대표적인 척도다. PBR이 1에 못 미치면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로 나눈 것보다 낮다는 의미인데, PBR이 0.2도 안 되는 ‘초저PBR’ 기업들도 있다. 작년 2월엔 이 기준에 드는 기업이 21곳이었는데, 올해는 55곳으로 늘었다. 당국이 곧 주식시장에서 퇴출시키려고 빨간 딱지를 붙여놓은 상장폐지 예정주보다도 PBR이 낮은 경우도 있다. 1년 전보다 전반적인 주가가 낮아지기도 했지만, 회사 스스로 주가 부양 의지가 없어 주가 하락을 방치한 곳들도 수두룩하다.

단기 부채보다 유동 자산 비율이 4.5배나 높은 알짜 기업 태광산업은 한때 주가가 100만원이 넘어 ‘황제주’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PBR이 0.15배까지 낮아진 대표적인 ‘똥값’ 회사로 분류된다. 오죽하면 태광산업 지분 6%를 보유한 2대 주주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최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경영에 복귀해서라도 회사 경영을 좀 챙겨보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꿈쩍 않고 있다.

여성 속옷 브랜드 ‘비너스’를 보유한 신영와코루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식 기업설명회(IR)를 20년간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것)이 작년 말 기준 3686억원에 달하지만 시가총액은 900억원에 불과해 증시에선 장부상 가치의 25%밖에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영업 활동이 부진했던 것도 아니어서, 사업보고서가 공시된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단 한 차례도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없다. 한 투자자는 “회사가 주가 상승을 오히려 두려워하는 느낌”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허망한 밸류업…76%는 평가 가치 더 낮아져

밸류업 정책에도 불구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지속되는 데는 정부가 제대로 된 ‘당근과 채찍’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거래소가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업들을 모아 만든 ‘밸류업 지수’ 종목 선정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면서 기업이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의지도 대폭 꺾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주가 부양 의지나 관심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승계를 앞두고 있거나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낮게 유지하는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애널리스트들이 기업 보고서를 쓰기 위해 IR 담당자들에게 연락했을 때 ‘왜요? 굳이 오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일부 오너 지분율이 높은 회사들은 주가가 올라봐야 상속 과정에서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에 시장과 소통을 하지 않으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남우 한국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 지배주주들은 상속세와 증여세 부담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걸 원치 않고, 배당소득세 때문에 배당보다는 현금 유보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배당소득세와 상속세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조정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익을 일치시켜야 기업들이 저평가 해소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