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장 마감 후 발표해 빈축을 산 이수페타시스(007660)의 최대주주가 최근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최대주주가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한 ‘실탄’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 당국이 회사의 유상증자 계획에 제동을 건 이후, 당국의 심사 문턱을 넘기 위해 당초보다 유상증자 규모를 절반 가까이 줄인 이후 또 다른 후속 조치가 나온 셈이다.
20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수페타시스의 최대주주 ‘이수’는 지난 11일 하나은행으로부터 413억원 규모의 한도대(입출금이 가능한 통장에 일정한 한도를 정하고 만기일까지 사용하는 대출)를 받았다. 413억원 중 이미 326억원은 소진했다. 연 이자율은 5.30%로, 담보는 이수페타시스 주식 137만2340주다.
이번 대출은 이수가 이수페타시스의 주식을 담보로 걸고 받은 현재 대출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지난해 4월 이수는 신행은행으로부터 180억원 규모의 한도대를 받았고, 같은 해 5월엔 대구은행으로부터 100억원을 빌렸다. 이들 대출 역시 담보는 이수페타시스 주식이다.
이달까지 받은 대출로 이수가 가진 이수페타시스 주식(지분율 21.19%) 중 3분의 1가량이 담보로 묶였다.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 중 6.28%(397만2340주)다. 세 은행에서 받은 대출로 이수가 내야 할 연 이자는 약 30억원이다.
이수가 수십억원의 은행 이자를 감당하면서 대출을 받는 것을 두고 일각에선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주 반발 등 잡음이 있었던 만큼 이를 잠재우기 위한 대책이란 얘기다.
앞선 지난해 11월 이수페타시스는 탄소나노튜브(CNT) 제조사 제이오를 인수하고 시설에 투자하겠다며 5500억원의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이에 주주들은 반도체 기판을 만드는 이수페타시스와 제이오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냐며 반발했다.
금감원 역시 유상증자와 관련된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라고 명령하면서 이수페타시스는 제이오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현재 진행 중인 유상증자는 시설자금에 대한 2500억원에 대해서만이다. 이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는 5번 정정됐고 최초 계획을 발표한 후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금감원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수페타시스가 진행하려는 유상증자의 규모는 2500억원으로, 이수가 지분에 비례해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면 출자해야 할 자금은 530억원이다.
하지만 이수의 자금 여력은 크지 않다. 2023년 말 기준 이수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176억원에 불과하다. 매출채권 등 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다 합쳐도 523억원이다. 대주주가 일으킨 주식담보대출이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금감원이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정정 요청을 하지 않을 경우, 회사는 기존 주주에게 청약을 받는다. 실권주가 발생하면 오는 4월 14~15일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한다. 예정 발행가액은 2만4600원으로 이날 종가인 4만1100원보다 40% 낮다. 최종 발행가는 추후 1개월과 1주일 가중산술평균주가와 기준일(신주배정기준일·구주주 청약개시일 등) 종가를 산술 평균해 일정한 할인율을 곱해 결정된다.
한편 금감원은 올해 유상증자 심사를 강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경영권을 두고 다투고 있는 고려아연(2조5000억원 규모)과 시설자금과 채무를 상환하겠다는 금양(4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지난해 취소로 이끌었는데,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0일 ‘2025년도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서 증권신고서 심사 기준과 관련해 “(기업에)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주주나 이해 관계자의 의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는 충분히 담겨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