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여부에 쏠렸다면, 올해는 소액주주 보호를 강조한 상법 개정과 자본시장법 마련에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예정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명시하거나 이른바 ‘쪼개기 상장’을 방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된 상태다.
다만 정치권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어 관련 법 개정 논의는 더디게 이뤄질 전망이다. 또 일각에서는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상장 기업을 지나치게 옥죄고 있다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개정안은 총 30건이다.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을 활발하게 발의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명시하는 상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다. 자본시장법의 경우, 여당에 이어 야당에서도 상법 개정과 함께 투트랙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여야가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쪼개기 상장 피해 방지 ▲유상증자에 따른 피해 방지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위한 방안 등이 담겼다.
특히 알짜 계열사를 분할해 상장하는 이른바 ‘쪼개기 상장’으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법안 내용이 비슷하다.
야당에서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모회사의 대주주를 제외한 일반주주에게 신주를 일정 비율 우선 배정하자는 법안이 다수 나와 있다. 구체적인 방안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야당에서는 ‘70% 이상 우선배정’(강준현 안)부터 ‘50% 배정’(민병덕 안), ‘25% 배정’(김용만 안) 방안이 나왔고, 여당에서는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이 ‘20% 우선 배정’ 방안을 내놨다.
기업의 유상증자를 규제하기 위한 자본시장법도 발의됐다. 김남근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유상증자 신주 발행가액의 할인율을 기준가액의 최대 10%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법상 일반공모 유상증자에 대한 할인율은 30% 이내(제 3자 배정의 경우 10%)다. 유상증자 할인율이 높게 책정되면, 신규 투자금을 유치하기는 쉽지만 주가에는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 의원이 발의한 법 개정안에는 경영권 분쟁 중에는 유상증자를 아예 금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는 지배권 분쟁 과정에서 유상증자를 시도한 고려아연(010130)의 사례를 언급했다. 또 ‘올빼미 공시’를 통해 기습적으로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한 이수페타시스(007660)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유상증자 등과 관련된 주요사항보고서는 거래소 매매거래시간 종료 2시간 전까지 제출하도록 하겠다고도 덧붙였다.
의무공개매수제도와 관련된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여야 모두 발의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매수자가 기업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을 취득하는 경우 지분의 일정 비율 이상을 공개매수로 취득하도록 한 제도다. M&A가 진행될 때 지배주주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적용받지만 일반 주식은 저평가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매수자가 기업의 지분 25% 이상을 취득해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 공개매수를 통해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총지분의 ‘50%+1주’ 이상을 의무적으로 공개 매수해야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강명구 국민의힘 의원이 내놓은 법안을 통해 추진될 전망이다. 반면 야당은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는 매수자가 잔여주식 전부를 최근 1년 내 최고가격으로 공개 매수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 외에도 지배주주가 상속·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억누르지 않도록 ‘주가순자산비율(PBR·시가총액 ÷ 순자산) 1배 상한법’을 도입하자는 법안도 발의됐다. 박민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상장주식의 상속·증여세를 계산할 때 PBR 1배를 초과해도 PBR 1배까지만 세금을 물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속·증여세가 발생한 기간 동안 주가가 높으면 세금이 늘기 때문에 지배 주주가 주가를 누르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법안은 다수 마련됐지만, 실제로 이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서 탄핵 소추안 가결, 체포 이후 정치권 혼란이 이어지면서 국회 상임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 관계자는 “당내에서 자본시장법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현재 여야 합의가 어려워 전체회의나 소위원회를 개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주식시장의 본래 기능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법안이 통과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의석수가 192석에 달하는 만큼 민주당이 주도하는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 할인율을 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규제하면 투자자를 유치하기 어렵고, 경영권 프리미엄 없는 일반 주식까지 높은 가격에 인수하게 하면 M&A시장 자체가 얼어붙을 것”이라며 “지나친 규제는 자본시장의 정상적인 기능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