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커버드콜 열풍에 이은 올해 흥행 유망 상장지수펀드(ETF)로 ‘버퍼’가 꼽히고 있다. 버퍼 ETF는 아직 국내엔 없는데, 출시를 놓고 자산운용사 간 눈치 싸움이 치열하다. 총대 메고 처음으로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경우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어서다. 현재까진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마냥 유리하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상장을 위해 금융당국을 설득해야 하는 데다 투자자의 반응을 가늠할 수 없어서다.

여의도 증권가/뉴스1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형사와 중형사를 중심으로 복수의 자산운용사가 본격적인 버퍼 ETF 준비에 나섰다. 시장점유율 상위 업체들은 지난해 검토를 마친 사안이기도 하다.

업계에선 지난해가 콜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살 권리)을 팔아 배당을 챙겨주는 커버드콜이 대세였다면, 올해는 버퍼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G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연초 7898억원 규모였던 커버드콜 상품의 순자산총액(AUM)은 날개 돋친 듯 팔리며 6조7201억원으로 늘어난 바 있다.

버퍼 ETF란 커버드콜 전략에 풋옵션(미리 정한 가격에 팔 권리)을 합친 것이다. 하방이 열린 커버드콜을 보완한 것이다. ETF 가격이 빠지더라도 미리 정한 가격으로 팔 수 있기 때문에 손실이 일정 부분 보장된다. 10%까지 손실을 방어해 주는 버퍼 ETF라면, 실제로 가격이 10% 빠졌을 때 투자자는 원금을 온전히 회수할 수 있다.

문제는 ETF가 증시에 상장해 투자자에게 팔리려면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커버드콜 사태’ 이후 빡빡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매월 분배금을 주는 월배당형 상품이 뜨면서 커버드콜이 주목받았는데, 금융감독원이 상품 이름을 두고 제동을 걸었다.

당시 삼성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은 상품 이름에 분배율을 표기해 왔다. ‘미국AI테크TOP10+15%프리미엄’ 등의 식이다. 금감원은 이름에 있는 15%를 투자자가 연 확정 수익률로 오해할 수 있다고 봤다.

여기서 15%란 자산운용사가 그 수준의 분배금을 목표로 콜옵션을 팔아 ETF를 운용하겠다는 뜻으로 확정된 수치가 아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을 개정해 기존에 상장된 ETF 이름에서 분배율을 모두 지운 바 있다.

한국거래소는 새로운 유형의 상품이니만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한 운용사 관계자는 “커버드콜 이후로 옵션이 들어간 상품에 대한 심사가 다소 까다로워졌다”고 토로했다. 이 탓에 버퍼 ETF를 준비 중인 운용사들은 타사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한 운용사가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를 거치면서 기틀을 다져놓으면 다음 타자는 이를 참고할 수 있어 과정이 훨씬 수월해서다.

한국거래소 전경./뉴스1

또 하나의 숙제는 투자자에 대한 어필이다. 새 유형의 상품이라 어느 정도 흥행할지 가늠할 수 없어서 먼저 출시한 자산운용사의 판매 추이를 보고 내놔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설명도 만만치 않다. 버퍼 ETF가 자칫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다. 이 상품은 보전하기로 한 비율보다 가격이 더 빠질 경우에도 투자자 손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돈을 잃을 수 있다.

미국에 상장된 버퍼 ETF는 대개 만기가 1년인데, 마이너스(-) 10%까진 보전해 준다고 가정하자. 상장 첫날에 상장된 가격인 1만원에 산 투자자는 만기 날 ETF가 9000원이 되더라도 1만원을 그대로 돌려받는다. 하지만 중간에 산 투자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중간에 ETF 가격이 1만5000원까지 올랐을 때 추가 상승을 예상한 투자자가 들어왔는데 가격이 오히려 9000원까지 떨어진다면, 만기 날 5000원(1만5000-9000+1000원)을 잃는다. 10%인 1000원만 챙기는 것이다.

또 다른 운용사 관계자는 “영업을 상장 첫날에만 하는 것도 아니라 설명하기가 까다로운 상품”이라며 “투자자에게 쉽게 소개하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버퍼 ETF는 일러야 3월쯤 등장할 예정이다. 당장 다음 달에 출시를 계획하는 운용사는 없다. 또 상품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예시와 달리 만기가 1년보다 짧아지거나 보장률이 10%에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