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에서 아이유노를 창업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과를 일군 이현무 대표. /조선DB

콘텐츠 자막·더빙 시장에서 세계 1위 사업자의 입지를 굳힌 아이유노SDI미디어그룹(이하 아이유노)이 미국 뉴욕 나스닥시장과 영국 런던거래소 중 한 곳에 상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유노는 연내 인수합병(M&A)을 완료해 몸값을 높여 상장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최대 3조~4조원의 몸값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아이유노는 나스닥이나 런던거래소 중 한 곳에 상장하기 위해 본격적인 기업가치 제고에 나섰다. 관련 업체 한 곳을 인수한 뒤 프리IPO 투자를 유치하고 나서 상장 시기를 조율할 것으로 알려졌다.

◇ 최초 투자사 SBVA, 손정의 투자까지 연결해 줘

아이유노는 전세계 34개국에 67개 지사를 둔 자막 현지화 및 더빙 전문 업체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HBO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에 80여개 언어로 자막 및 더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세게 자막 및 더빙 업체 중 가장 많은 언어를 다룬다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지금은 세계 1위 업체로 우뚝 섰지만, 아이유노가 출발한 곳은 서울의 한 골방이었다. 연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이현무 대표가 외화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대사를 받아 적고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창업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표는 월급이 밀리자 친구들과 직접 번역 회사를 창업했고, 수기가 아닌 컴퓨터로 영상을 번역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다 10억원의 빚을 지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 대표는 싱가포르로 출국해 ‘한류 붐’을 타 일감을 얻기 시작했다. 아이유노의 번역 기술은 넷플릭스 등 ‘OTT 공룡’들로부터 선택을 받았고, 회사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으로 진출하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각 나라의 문화적 코드를 학습해 정확하고 신속하게 의역하는 데 강점이 있다고 인정받았다.

아이유노가 지금까지 투자받은 돈은 3000억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8년 SBVA(옛 소프트뱅크벤처스아시아)가 240억원을 투자한 게 시작이었다. 아이유노는 지금까지도 SBVA에서 가장 ‘아끼는’ 포트폴리오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아이유노는 투자를 받고 거래처를 늘리는 수준에 만족하지 않았다. 과감한 M&A로 몸집을 키워나갔다. SBVA의 지원하에 2019년 유럽 최대 자막 업체 BTI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엔 미국 최대 업체 SDI까지 삼키며 단숨에 연 매출 6000억원이 넘는 세계 1위 자막·더빙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후 SBVA가 직접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에게 아이유노를 소개했으며, 이로 인해 2021년 비전펀드가 1조원의 기업 가치에 1800억원을 베팅했다. 골방에서 설립된 지 19년 만에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이 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아이유노 더빙 스튜디오. /아이유노 홈페이지 캡처

◇ 런던거래소, 이미 동종 업체 상장… 추가 M&A 완료해 기업가치 높인다

아이유노는 2022년 초 IMM인베스트먼트로부터 1400억원을 투자받았다. IMM인베는 같은 해 11월 3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신주와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구주를 샀다. 단일 포트폴리오사에 1700억원을 투입한 만큼, IMM인베 입장에서도 아이유노의 성공적인 상장이 절실하다.

다만 IMM인베는 2021년 결성된 블라인드펀드 ‘페트라8호’를 통해 투자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시기상 엑시트(투자금 회수) 필요성이 가장 큰 기관은 초기 투자사 SBVA이다.

아이유노는 국내 상장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이 있는 회사인 만큼, 해외 증시에서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스웨덴에 지주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플립(flip·해외에 법인을 세운 뒤 한국 법인의 주주 구성과 지분율을 그대로 옮기는 것) 절차도 거칠 필요가 없다. 한국 회사가 해외에 상장하려면 미국 법인으로 플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거액의 양도세가 발생한다. 지분의 취득 금액과 현 시점 순자산 가치의 차액을 양도차익으로 인식한 뒤 10~30%의 양도세를 부과하는 게 일반적이다.

런던거래소를 선택지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이유는 동종 업체가 이미 상장돼 있어 심사 인력의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주디지털(Zoo digital)은 2001년 런던거래소에 상장했으며 현재 자막·더빙 및 콘텐츠 현지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유상증자를 통해 740만파운드(약 125억원)를 성공적으로 조달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주가 흐름은 부진하다.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주당 200파운드를 넘었지만, 미 할리우드에서 작가들이 파업하면서 주디지털도 실적에 악영향을 받고 주가가 하락했다. 현재는 20~30파운드대에 거래되고 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이유노가 M&A까지 완료하면 최대 3조~4조원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전했다. 아이유노는 2022년 IMM인베로부터 투자받을 당시 1조2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