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에서 600억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하면서 당시 감사인이었던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이하 딜로이트안진)에 대한 신뢰에 다시 금이 가고 있다. 딜로이트안진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에서 소속 회계사들이 이를 눈감아 방조한 곳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1년 업무정지를 의결했지만, 딜로이트안진이 소송을 제기해 현재도 업무정지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고 있다. 회계업계에서는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Deloitte)가 딜로이트안진과의 파트너십을 해지할 지에 관심이 쏠린다.

딜로이트는 과거에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회계법인이 분식회계 등 신뢰도에 문제가 발생하면 파트너십을 해지했었다. 2017년 대우조선 사태 당시에도 딜로이트는 안진과의 파트너십 해지를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대우조선 사태에 이어 우리은행 횡령 사태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브랜드 신뢰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준 만큼 딜로이트 본사에서 이번에 다시 파트너십 해지를 검토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산동회계법인, 안건회계법인 등 과거에 글로벌 회계법인들이 파트너십을 해지했던 국내 회계법인들은 모두 폐업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었다.

2일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딜로이트는 당연히 브랜드 훼손을 우려할 것이고 파트너십을 해지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며 “파트너십 해지에 대한 칼자루는 100% 글로벌 본사에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아직 우리은행 사태에 대한 딜로이트안진의 내부 조사가 진행 중이라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다”면서도 “과거에도 글로벌 회계법인이 파트너십을 해지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딜로이트 영국 런던 본사. / 게티이미지

◇ 겹악재에 딜로이트 명성 계속 훼손

딜로이트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PwC), 언스트 엔 영 (Ernst & Young·EY), KPMG와 함께 세계 4대 회계법인(Big 4)에 속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1845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돼 본사는 영국 메이페어와 미국 뉴욕에 있다. 현재 150개국에서 회계감사, 세금자문, 경영 및 금융자문, 리스크 매니지먼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업계에서 딜로이트가 안진에 대해 파트너십 해지를 검토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안진이 딜로이트의 명성과 브랜드 가치를 계속 훼손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딜로이트안진은 우리은행 횡령 사태뿐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캔들에 계속 휘말리고 있다.

딜로이트안진은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분식회계 당시 이 회사의 분식회계를 알고도 묵인한 곳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규모는 5조원대에 달한다. 이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딜로이트안진 소속 전·현직 회계사 4명은 지난 2018년 3월 징역형의 실형을 받았다. 불법 행위자와 소속 법인을 모두 처벌하는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된 딜로이트안진도 벌금 7500만원을 받았다. 이에 앞서 2017년에는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딜로이트안진에 1년간 신규감사 업무 정지, 과징금 16억원을 조치하기도 했다.

당시 증선위는 안진이 신규감사를 2017년 4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의결했다. 안진은 이에 대해 불복 소송을 제기했고 아직도 고등법원에서 업무정지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안진회계법인의 업무정지 기간은 2017년 4월부터 2018년 4월까지로 이미 지났지만, 대법원은 업무정지 기간이 끝났다고 해도 업무정지 처분의 적법성을 심리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인이었던 우리은행에서 다시 600억원대의 횡령까지 발생했고, 금융감독원은 딜로이트안진에 대한 감리에 들어가게 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홍종성 딜로이트안진 대표의 리더십과 딜로이트안진 내부 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고 했다.

우리은행에서 세 차례에 걸쳐 회삿돈 614억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는 직원 A씨의 동생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으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 파트너십 청산 회계법인들은 모두 ‘폐업’

딜로이트 본사도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앞서 지난 2017년 대우조선 사태 당시에도 딜로이트는 안진과의 파트너십을 해지할 것을 검토했지만 파트너십을 유지한 바 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은 딜로이트와 제휴를 맺기 전 미국의 아더앤더슨과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그러나 아더앤더슨이 미국 에너지 기업 엔론의 분식회계에 휘말려 2002년 폐업하면서 안진회계법인은 글로벌 파트너를 잃었다. 이후 안진회계법인은 2005년 2월 딜로이트와 파트너십 제휴를 하던 하나회계법인과 합병해 출범했고 이때부터 딜로이트와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딜로이트는 하나회계법인과 파트너십을 맺기 전 안건회계법인과 파트너십을 유지했다. 그러나 안건회계법인이 동아건설, 대우자동차 등의 분식회계에 연루돼 검찰 조사와 법적 분쟁을 겪자 딜로이트는 안건회계법인과의 파트너십을 종료(2005년 5월)했고 내리막길을 걷던 안건회계법인은 결국 2007년 6월 청산됐다.

딜로이트의 안건회계법인 사례 외에도 글로벌 회계법인의 파트너십 해지가 국내 회계법인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또 다른 다국적 회계·컨설팅 기업인 KPMG의 경우 산동회계법인과 파트너십 제휴를 맺고 ‘KPMG산동’이란 브랜드로 영업해왔다. 그러나 2000년 12월 산동회계법인이 대우그룹 부실 감사로 영업정지 1년 조치를 받자 파트너십을 해지하고 결국 산동회계법인은 문을 닫았다. KPMG는 삼정회계법인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안진에 대해 딜로이트가 일방적인 파트너십 해지는 가능한 상황”이라면서도 딜로이트 본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