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 동학개미의 해였다면, 2021년은 서학개미(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였다.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해외 주식으로 눈 돌리는 투자자가 급증한 가운데, 올해 서학개미의 관심은 테슬라를 포함한 빅테크 기업에 쏠려 있었다.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투자 열기도 뜨거웠다.
3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28일까지 개인투자자가 순매수한 해외주식은 223억9827만달러(한화 약 26조5688억원)다. 지난해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197억3400만달러·23조4164억원)보다 13% 넘게 증가했다. 코스피지수가 하반기 들어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면서 미국 등 해외 증시로 투자자들 자금이 옮겨간 것으로 풀이됐다.
테슬라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서학개미가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들어 28일까지 서학개미는 테슬라 주식 28억9449만달러(약 3조4334억원)어치를 사들였다. 테슬라 순매수 금액을 국내 증시 순매수 상위 종목과 비교하면 순매수 1위인 삼성전자(005930)(30조5819억원)와 2위인 삼성전자 우선주(5조858억원)보다는 적다. 그러나 국내 순매수 3위 종목인 현대모비스(012330)(3조1351억원) 보다는 순매수 금액이 많다. 사실상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이 테슬라인 셈이다.
이처럼 테슬라에 적극 자금을 넣었지만 주가 변동은 심했다. 지난 1월 883.09달러까지 치솟으며 천슬라(1000달러+테슬라) 기대감을 키우던 테슬라 주가는 이후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후 3월과 5월에 50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다시 10월부터 주가가 반등하기 시작했고 같은 달 25일에 처음으로 1000달러 고지를 밟았다. 지난달 11월 4일에는 역대 최고가인 1243.49달러까지 오르면서 ‘천이백슬라’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테슬라 다음으로 서학개미가 많이 사들인 나머지 종목 모두 기술주였다. 구글 알파벳(7억1243만달러), 애플(6억8858달러), 엔비디아(6억5105달러)가 나란히 순매수 상위 3~5위를 기록했다. 메타로 사명을 바꾼 페이스북(5억9764만달러)이 6위였고, 마이크로소프트(5억5072만달러)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인 ASML홀딩스(4억3689만달러)가 각각 8위, 10위를 차지했다.
이 중 알파벳은 올해 1월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하고, 1년도 되지 않아 몸값을 두 배로 키웠다. 지난달 알파벳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세 번째로 2조달러 클럽에 가입한 빅테크 기업이 됐다. 애플의 경우 올해 시총 3조달러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애플은 2018년 처음으로 시총 1조달러를 웃돌았고, 지난해 8월에는 2조달러를 돌파했다.
연초 대비 수익률을 기준으로 보면 엔비디아 주가가 131.22% 상승하며 1위를 차지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주력 상품을 내세우고 있는 엔비디아 주가 상승 배경에는 메타버스가 있다. 엔비디아가 출시한 인공지능(AI) 기반의 메타버스 협업 플랫폼 ‘옴니버스’는 산업, 제조, 디자인, 자율주행 등 여러 분야에 메타버스를 적용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 업체인 ASML 주가는 76.07% 상승했다. ASML은 전 세계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업체로,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 속에서도 주가는 고공행진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000660), TSMC, 인텔 등 반도체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알파벳(69.96%), 마이크로소프트(56.76%), 테슬라(49.15%), 애플(38.54%), 메타(28.74%) 등 수익률이 뒤를 이었다.
한편, 지난해만 해도 테슬라, 애플, 알파벳 등 개별 종목에 쏠려 있던 투자 열기가 올해에는 상장지수펀드(ETF)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테슬라 다음으로 서학개미가 많이 사들인 건 ‘프로셰어즈 울트라프로 QQQ’ ETF(TQQQ)다. 서학개미는 나스닥100지수의 하루 수익률의 3배 만큼 수익이 발생하는 TQQQ를 8억4330만달러(약 1조6947억원) 이상 순매수했다.
서학개미는 이 밖에도 미국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 ETF(QQQ)는 5억9224만달러(약 7025억원) 사들였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추종하는 SPDR SP500 ETF 트러스트(SPY)는 순매수 규모는 5억2804만달러(6264억원)였다. QQQ와 SPY는 순매수 상위 7위와 9위를 기록했다. ETF 중에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건 TQQQ로, 올해에만 주가가 97% 이상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