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 제공

이 기사는 2025년 6월 18일 17시 3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롯데손해보험이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조기 상환하려다 금융당국에 의해 저지된 이후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금감원은 롯데손보가 150% 이상의 지급여력비율(K-ICS)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롯데손보의 콜옵션 행사를 막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롯데손보 입장에선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이 거의 유일한 해답임에도 한 달 넘게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롯데손보가 현 상황에서 섣불리 유증을 단행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금감원이 콜옵션 행사를 막는 근거가 됐던 가이드라인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롯데손보는 금융당국이 내민 원칙이 국제 회계기준에 위배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원칙을 고수했던 이복현 금감원장이 지난 5일부로 퇴임한 데다 과거 비슷하게 국제 회계기준의 해석 문제에서 비롯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사건이 검찰의 패배로 귀결되고 있는 만큼, 차기 금융당국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롯데손보의 상황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당시 검찰에서 수사를 지휘했던 인물도 이 전 원장이었다.

◇ 금융당국 가이드라인 내놓자 롯데손보 K-ICS ‘뚝’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콜옵션 행사 저지 후속 조치와 관련해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롯데손보에 대해 적기시정조치도 하지 않은 만큼 아직은 유상증자를 결정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롯데손보의 대주주인 JKL파트너스가 당국과 (개선 방안에 대해) 계속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롯데손보는 지난달 900억원어치 후순위채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할 계획이었으나, 금감원은 콜옵션이 행사되면 K-ICS 비율이 150%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당시 이 전 원장은 롯데손보의 후순위채 조기상환 시도에 강한 유감을 표하며 “재무상황 평가 결과가 확정되는 대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의 기준을 충족하려면 롯데손보 입장에선 유상증자 외엔 마땅한 답이 없다. 롯데손보의 K-ICS 비율은 2023년 말 기준으로 154.6%였지만, 올해 1분기엔 119.9%까지 떨어졌다. 여기에 기존 ‘예외모형’이 아닌 ‘원칙모형(금감원이 고시한 표준 위험 측정 공식에 따라 계산하는 방식)’을 적용한다면 K-ICS 비율이 82.8%로 급락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려면 자본 확충이 필수적인데,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등은 기본자본이 아닌 보완자본이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만큼 유상증자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도 롯데손보가 이렇다 할 액션을 취하지 않는 이유는 금융당국 수장 자리가 아직 공석으로 있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만약 금융당국의 수장이 바뀐 뒤 가이드라인이 원상복귀된다면, 롯데손보 입장에선 지금 유증을 하는 게 불필요한 조치가 되지 않겠느냐”며 “현재로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손보는 그동안 금감원 제재가 국제회계기준(IFRS 17)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대표적인 게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관련 가이드라인이다. 지난 2022년 IFRS 17이 도입된 이래 보험사들은 계약 현금흐름 추정 및 계약서비스마진(CSM) 산출에 필요한 해지율 등 계리 가정을 자체적으로 수립해 왔다. 보험사 입장에서 해지율 가정을 높게 설정하면, 보험금 지급 가능성이 낮아지는 모양새가 되며 이는 CSM의 확대 및 재무 상황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나오면서, 보험사들은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추정을 ‘로그-선형 모형’ 등 특정 방법론으로 정형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는 롯데손보에 직격탄이 됐다. 롯데손보는 그동안 무·저해지 상품 비중이 높았으며 K-ICS 비율이 경쟁사 대비 낮았던 만큼, 이번 계리 가정 변경으로 인해 K-ICS 비율의 추가 하락과 CSM 축소라는 이중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롯데손보는 금융당국이 이렇게 국제회계기준을 자의적으로 바꿔서 적용하는 건 위법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이복현 검찰이 기소했던 삼성바이오 사건과 비슷

업계에서는 과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사건 때도 IFRS를 더 문언적으로 해석한 삼성 측이 승소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롯데손보 역시 IFRS를 문언적으로 해석해 예외모형을 적용한 만큼, 향후 금융당국과 본격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면 롯데손보 측이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은 지난 2015년 회사가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내면서 불거졌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면서 약 4조5000억원의 이익을 계상했는데, 이 회계 처리가 IFRS 10에서 말하는 ‘지배력 상실’ 요건에 부합하느냐가 사건의 핵심이었다.

당시 삼성 측은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IFRS 10의 기준에 따라 지배력이 상실됐으며, 이에 따라 합법적으로 회계처리를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지배력 상실 요건을 문언적·형식적으로 해석한 결과였다.

이 사건에서 검찰 수사를 지휘했던 인물이 바로 이복현 전 원장이다. 이 전 원장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사건은 삼성의 완승으로 귀결돼 가고 있다. 이 전 원장이 기소했던 형사 사건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금융당국 제재에 대한 취소 소송(행정소송) 2심 재판도 지난 11일 삼성의 승소로 끝났다.

롯데손보 논쟁에서도 IFRS를 더 문언적으로 해석한 쪽은 롯데손보다. IFRS 17은 보험사가 ‘완전 소급법’, ‘수정 소급법’, ‘공정가치 접근법’ 중 하나를 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완전 소급법을 적용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수정 소급법이나 공정가치 접근법 중 하나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정가치 접근법이 바로 예외모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