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6월 2일 17시 35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지난 3년간 감사인 강제 지정을 받았던 대형 상장사가 올해 자유수임 시장에 많이 풀렸지만, 중소 등록 회계법인의 표정은 밝지 않다. 대형 회계법인 간 출혈 경쟁이 심화한 동시에 금융당국이 감사 품질 강화를 요구하면서 상황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에 감사 부문을 떼어내 좀 더 큰 회계법인에 인수합병(M&A)시키고, 라이선스를 반납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2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견 회계법인인 BDO성현회계법인과 규모가 작은 보현회계법인의 회계감사 부문이 합병했다. 상장법인을 감사하는 등록법인에 요구되는 높은 품질관리 수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는 게 회계법인 측의 설명이다. 2019년 4월 성도와 이현회계법인이 힘을 합쳐 출범한 성현회계법인은 이번 합병으로 직원 수가 340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보현회계법인에서 16명이 성현회계법인으로 넘어간다.
주목할 점은 보현회계법인이 이번 합병을 통해 등록 회계법인 간판을 스스로 내려놓았다는 점이다. 합병 여파로 회계사 40명을 보유해야 한다는 등록 회계법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법적으로는 자진 철회가 아닌 등록 취소가 적절해 금융위원회는 이달 내 보현회계법인의 상장사 감사인 등록을 취소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현회계법인이 자체 조직 개편에 따라 상장회사를 더 이상 감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라이선스를 반납은 하되 제도상 불이익이 없도록 살펴보는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과거 지정인 감사제로 보현회계법인이 선정된 상장사 등 이해관계자나 시장에 피해가 없는지 검토하고 있다. 조만간 큰 무리 없이 등록 취소 작업이 마무리될 전망”이라고 했다.
등록 회계법인, 즉 상장사 감사인 등록제는 금융위가 인력과 물적 설비 등이 일정 수준 이상인 회계법인에만 상장사 외부감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2018년 신(新)외감법이 만들어지면서 이듬해 도입됐다. 금융위가 제시하는 등록 요건은 ▲40인 이상의 공인회계사 ▲회계법인 규모에 비례하는 품질관리 인력 확보 ▲통합품질 관리 체계 구축 ▲감사보고서 심리 체계 구축 ▲성과 평가 시 품질 평가지표 활용 등이다.
그러나 중소회계법인 사이에선 제도 도입 초기부터 등록 문턱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난해 삼정·안진 등 대형 회계법인 2곳을 포함해 총 14곳을 감리한 결과, 총 122건의 지적 사항이 나왔다. 4대 법인의 지적 건수는 평균 6.0건이지만, 나머지 중소회계법인 12곳의 지적 건수는 이보다 높은 9.2건에 달했다.
중소회계법인이 가장 많이 지적받은 항목은 업무 수행이었다. 110건의 지적 중 28건으로, 평균 2.3건이었다. 업무 수행은 감사보고서 발행 전 사전 심리 등 절차를 잘 운영했는지, 감사 조서를 잘 관리했는지를 평가하는 항목이다. 통합 관리 체계 미흡 문제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리더십 책임 항목에선 평균 2.1건(약 23%)의 지적을 받았다. 법인은 같아도 소속 회계사들이 사실상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는 특성상 통합품질 관리 체계를 갖추기 힘든 것이다.
여기에 대형 회계법인이 업계 불황에 감사비 출혈 경쟁을 벌이는 점도 중소 회계법인에 타격을 주고 있다. 회계법인 기준 전체 매출에서 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40% 정도다. 감사인 자유수임 경쟁 결과가 업계 순위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지정 감사 보수 대비 30% 이상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례도 속속 나오고 있다. 중소 회계법인 처지에선 매출 감소에 따라 M&A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감사인 등록제 시행 이후 자유 수임 물량이 풀린 지 3년이 지나면서 중소 등록 회계법인이 하나둘 변화에 관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이 감사 품질 향상을 계속 요구하고 있어 지금처럼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상장사를 감사할지, 아니면 보현회계법인처럼 감사 인력을 분리하고 갈 길을 갈지 고민하는 곳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때문에 추가로 라이선스를 반납하는 곳이 생길 것 같다는 게 업계 분위기”라고 했다. 다만 당국에 따르면 보현회계법인 이외에 등록 취소를 접수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에도 진일회계법인과 세일원회계법인이 합병한 태일회계법인이 통합 사무실로 이전하며 본격적으로 출범을 알렸다. 태일회계법인은 소속 회계사가 127명으로 커졌고, 이에 따라 ‘나’군 회계법인이 되면서 자산 규모 2조원대 상장회사 등의 회계감사 계약을 다수 체결했다. 진일·세일원회계법인이 등록 회계법인끼리는 처음으로 합병하면서 등록 회계법인은 41개에서 40개로 줄었고, 올해도 2곳이 등록 간판을 내리는 걸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