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손해보험이 금융당국의 반대에 결국 후순위채권 조기상환(콜옵션) 계획을 보류하면서 채권시장 투자자들이 울상이다. 전문가들은 후순위채를 비롯한 자본성 증권의 경우 콜옵션이 관례화돼 있지만 의무는 아닌 만큼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롯데손해보험 8(후)’ 가격은 12일 장내 채권시장에서 전일 대비 89.5원 하락한 9890원에 거래됐다. 장중 96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 채권 가격은 지난 2일 1만118원에서 다음 거래일인 7일 9920원으로 급락했다가 8일 9959원으로 반등했고, 9일 다시 9898.5원으로 하락했다. 가격 변동 폭이 작은 채권 특성을 고려할 때 낙폭이 크다는 평이다.
9600원대 가격은 만약 롯데손보가 하반기 콜옵션을 행사한다면, 연환산 수익률이 10%가 넘는 수준이다. 즉 현재 가격은 롯데손보가 하반기에도 후순위채를 갚아주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셈이다.
롯데손해보험의 다른 후순위채도 비슷하다. 일례로 1400억원 규모 ‘롯데손해보험 9(후)’ 가격은 7일 종가 기준 1.8% 하락한 뒤 이후로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 후순위채 가격은 5거래일 만에 3.1% 하락했다.
롯데손보는 900억원 규모 후순위채권 콜옵션 행사를 두고 금융감독원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금감원은 롯데손보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 직전인 지난 7일 건전성 우려를 이유로 들며 이를 저지했다. 그러나 롯데손보 역시 투자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강조하며 콜옵션 행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금감원이 제재 카드를 꺼내 들었고, 결국 롯데손보는 12일 백기를 들었다.
채권시장에서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같은 자본성 증권은 만기와 상관 없이 명시된 시점에 콜옵션을 행사하는 것이 ‘관행’이다. 후순위채의 경우 통상 10년 만기에 5년 콜옵션 조건을 건다. 이에 투자자 대부분이 콜옵션을 처음 행사할 수 있는 발행 5년 후 시점을 실질적인 만기로 간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롯데손보가 이례적으로 콜옵션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면서 ‘패닉셀(공포에 따른 투매)’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다른 회차의 채권, 나아가 다른 금융사의 후순위채도 제때 상환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 탓이다. 특히 신용등급이 A-인 롯데손보 후순위채는 기관투자자보단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유통됐다. 8회 후순위채의 경우 900억원 중 3분의 2 정도를 개인투자자가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후순위채는 고위험을 감수하는 대가로 선순위채보다 1~2%포인트가량 높은 이자수익을 챙길 수 있어 금리 인하기인 최근 인기가 커졌다”며 “이 중에서도 보험사가 발행한 후순위채는 재무지급여력비율(K-ICS·킥스) 관리를 위해 신용등급이 우수한 상품이 많다는 이유로 개인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본성 증권의 발행 제도와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상시에는 차환과 콜옵션 행사가 무리 없이 이뤄지겠지만, 레고랜드 사태처럼 조달 환경에 문제가 생기거나 롯데손보 사태처럼 개별 금융사 차원의 경영 상황이 악화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코코본드 이외의 자본성채무증권의 발행과 관련된 제도와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른바 ESG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과 유사한 성격의 ‘위장자본 논란’이 앞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설령 옵션 행사가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그 채권이 원래 그렇게 발행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금리가 높은 건 이유가 있다”고 했다.
롯데손보 투자자들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롯데손보가 콜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유상증자나 차환에 나설 수 있을지 여부다. 하지만 최대 주주가 추가 출자가 어려운 사모펀드라는 특성상 당장 유상증자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