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이 기사는 2025년 4월 23일 17시 13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나이스(NICE)신용평가가 카드대금채권 유동화증권(ABSTB)을 차입금 범주에 넣어 신용도를 평가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에 빗대 설명하면 신용카드 사용액이 너무 많으면, 추후 갚아야 할 카드대금이 너무 커 재무 상태에 무리가 될 수 있어 이를 신용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진행하는 6월 정기평가에서 카드대금 유동화금액이 과다한 일부 기업에 대해서는 카드대금 유동화금액을 차입금에 더해 채무상환 능력을 분석할 방침이다. 보고서에 공식적으로 차입금으로 적시하진 않지만, 기존 명목상 차입금에 더한 조정 차입금으로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원칙적으로 얘기하면 카드대금 유동화금액은 차입금이 아니다. 기업의 차입지표를 악화시키지 않기에 신용도 평가에도 크게 영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활용하는 기업이 생기기 시작했다. 신용등급이 떨어졌거나, 자금 조달이 어려운 기업들이 구매전용카드를 통해 사실상의 단기차입을 늘린 것이다.

대표적인 게 홈플러스 사태다. 홈플러스는 롯데·현대·신한카드의 구매전용카드를 통해 협력업체로부터 물품을 구매해 왔다. 카드사가 협력업체에 먼저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이후 일정 기간 뒤 홈플러스로부터 대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구매전용카드를 이용해 물건을 ‘외상’하고, 카드사는 홈플러스로부터 받을 돈(매출채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카드사 입장에서는 홈플러스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리스크를 줄이고자 매출채권을 유동화해 줄 증권사를 물색했고, 홈플러스 사례에서는 신영증권이 등장했다. 신영증권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은 이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ABSTB 등 단기 회사채를 발행해 투자자 자금을 모아 카드사에 넘겼다. 이후 홈플러스가 카드대금을 지불하면 투자자들은 이익금을 나눠 갖게 되는데, 홈플러스가 이 카드값을 갚지 못하게 되면서 4000억원의 손실을 보게 된 투자자들이 생겨난 것이다.

홈플러스 사태 전단채(ABSTB) 피해자들이 3월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점 앞에서 소비자카드 매출채권 상계처리 전단채 피해 원금반환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에 시장에서는 유동화증권을 이제는 단기차입금으로 보고 신용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경기 둔화로 자금 조달이 여의찮은 기업들이 카드 결제를 늘리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신한·삼성·현대·KB·롯데·우리·하나·비씨·농협 등 국내 9개 카드사의 올해 1분기 법인의 구매전용카드 실적(일시불 기준)은 11조3000억원이었다. 이는 1년 전(8조9000억원)보다 27%(2조4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연간으로 보면 지난해 기업 간 카드 거래액은 43조9000억원으로, 국내 9개 카드사 체제가 구축된 2014년 이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용평가 업계 관계자는 “카드대금이 유동화된 회사들을 보면, 최근 2년 내 신용등급이 떨어졌거나 자금 조달이 잘 안되는 업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나이스신평처럼 공식화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신용평가도 신용평가 과정에서 카드대금채권 유동화가 얼마나 됐는지를 고려하고 있다.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아니지만 홈플러스 사태 이전부터 유독 유동화 규모가 큰 기업은 신용 평가할 때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곳과 달리 한국기업평가는 유동화금액이 감사보고서 기준 미지급금 형태를 띠는 원칙상 차입금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실무적인 관점에서 감사보고서에 공개되지 않는 유동화 차입금 자료를 모두 청구해 금액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고, 미지급금으로 계산된 금액의 유동화 여부를 하나하나 파악하는 것도 정확도가 떨어진다”면서 “ABSTB가 금융채권과 상거래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차입금이냐, 아니냐에 대한 판단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