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4월 4일 15시 5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고려아연(010130)이 영풍(000670)·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급격히 늘어난 차입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사채, 기업어음(CP)을 발행한다. 통상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은 유상증자는 물론, 회사채 발행도 순탄치 않다. 그러나 고려아연 회사채 발행에는 적지 않은 기관 투자자가 몰렸다.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고 판단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3일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총 4000억원 모집에 1조16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받았다. 2년물(2000억원) 모집에는 6550억원, 3년물(2000억원)엔 5050억원의 자금이 각각 들어왔다. 고려아연은 AA+ 등급 민간 채권 평가회사 평균 금리(민평 금리) 기준 2년물은 17bp(베이시스포인트·1bp=0.01%포인트), 3년물은 21bp에 목표액을 채웠다. 회사채 발행일은 오는 11일이다.
주목할 점은 고려아연이 같은 신용등급을 가진 다른 회사보다 넓은 희망 금리 밴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마이너스(-)50~+50bp의 금리를 제시했다. 올해 회사채를 발행한 포스코·SK 등과 비교하면 하단을 2bp 낮추는 대신 상단을 2bp 높였다. 기관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조건을 상대적으로 넉넉하게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수요예측 직전까지 미매각 우려가 나왔으나 기관투자자들은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최윤범 회장 측은 지난 3월 28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과반을 지켜내며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다. 영풍·MBK의 일부 의결권(25.4%)을 상호주 관계로 제한하면서 유리한 위치에서 주총을 이끌었다. 고려아연이 주총 안건으로 제시한 이사 수 19명 상한, 신규 이사 8인 선임 등이 모두 통과됐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회사채 발행 주관사가 미래에셋·KB·하나증권이라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고려아연이 영풍·MBK와 지분 경쟁 때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증권사 3곳이 선정됐다.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사무취급자이자 유상증자 모집주선회사 역할을 맡았다. 유증 과정에서는 미래에셋증권이 모집주선인을, KB증권이 공동모집주선 역할을 맡았다. 하나증권은 고려아연 쪽에서 영풍정밀 공개매수를 담당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최 회장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상처’도 입었다.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 이후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세웠는데, 당시 유상증자 주관사에 선정됐던 미래에셋증권이 공개매수 기간 유상증자 계획을 알면서도 공개매수 신고서에 누락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인 것이다. 금감원은 미래에셋증권을 불공정거래 혐의로 조사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고려아연 ‘빅딜’ 주관했다 날벼락 맞은 미래에셋… 부정거래 위반 방조가 뭐길래)
고려아연은 지난 2일에도 2000억원 규모 6개월물 CP를 연 3.20%에 발행했다. 6개월 전인 지난해 9월 발행한 CP 금리 대비 최대 0.4%포인트 낮췄다. 최근 국고채 금리 하락으로 단기물 금리가 떨어진 덕분이다. 다만 6개월마다 차환해야 하는 등 CP는 운용 기간이 짧아 장기물인 회사채 발행에도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고려아연은 이번 자금 조달로 ‘급한 불’부터 끌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10월 약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자사주 공개매수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메리츠증권,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돈을 빌렸다.
특히 메리츠증권에서 연 6.5%의 고금리로 빌린 1조원 규모의 차입금 상환이 시급하다. 고려아연과 같은 신용등급의 민평금리 평균이 3.2%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무려 두 배 수준으로 이자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낮출 정도였다. 15년 만의 공모 회사채 발행이 흥행 성공한 만큼, 고려아연은 최대 7000억원까지 채무를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영풍·MBK와 반년 넘게 이어진 경영권 분쟁으로 재무 상태가 악화한 상황이다. 이자 비용은 2023년 423억원에서 1년 만에 1179억원으로 179%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대비 이자 비용 비율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도 15.6배에서 6.1배로 하락했다. 고려아연은 2024년 4분기 설립 이래 처음으로 2457억원 순손실을 기록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은 성공했지만 아직 부채비율이 높다”면서 “법적 분쟁이 계속될 예정인 만큼, MBK와의 여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내부 정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