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4월 3일 14시 27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어떤 기업을 감사할 때, 부실 징후로 보고 조심해야 할 요소는 다양하다. 일례로 최근 감사보고서 제출 마감일을 넘기면서 주가가 하한가를 기록한 바이오 기업 앱클론을 보자. 앱클론은 올해 1월 지난해 잠정 매출액이 30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감사 과정에서 회계법인과 갈등이 있었다. 일부 매출이 총액이 아닌 순액(순이익) 기준으로 인식돼야 했던 것을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이 발견한 것이다. 만약 앱클론이 끝까지 지적받은 매출액을 수정하지 않았다면, 감사 의견 ‘한정’이나 ‘부정적’이 나갔을 수도 있다.한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3월 말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회계업계 감사 시즌이 마무리됐지만, 주주들에게 감사보고서를 보고하지 못한 상장사가 올해도 속출했다. 원인은 대부분 외부감사인인 회계법인이 충분한 감사 근거를 제출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이 곧바로 금융당국 제재 대상이 되는 건 아니지만, 재무구조에 문제가 발생한 기업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
감사 의견은 적정을 받았더라도, 회계사가 주석 어딘가에 경고장을 숨겨둔 경우도 많다. 투자자들이 스스로 꼼꼼히 챙겨봐야 하는 이유다.
3일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 카인드(KIND)에 따르면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한 상장사는 코스피 3곳, 코스닥 19곳, 코넥스 7건으로 총 29곳인 것으로 집계됐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등에 따르면 12월 결산 법인은 회계연도 종료일로부터 90일 이내인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외부감사인은 이를 토대로 감사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기업의 재무제표가 회계기준에 맞는지 검증하는 역할을 한다.
감사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로 감사 지연이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늦었다’는 문제가 아닌 일종의 경고등으로 여겨야 한다. 기업이 제대로 된 재무 자료를 감사인에게 제출하지 못했다는 말은 즉, 나중에 경영진의 횡령이나 분식회계 등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통해서다.
감사 업무를 담당하는 회계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실기업을 의심할 수 있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비정상적인 매출 증감, 허위 매출, 수익기간귀속(Cut-off) 오류, 수익 인식 시점 조정, 총액·순액 차이 등이다. 또 특수관계자 거래 과도, 영업 현금 흐름과 순이익 차이, 매출채권 장기 미회수, 재고자산 증가 등도 살펴봐야 하는 포인트다. 적자 누적 기업이 제3자배정 유상증자,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했는데, 대금이 사외로 유출된 경우도 포함된다.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감사 계획 단계에서부터 부정 징후를 인지하고 적절한 감사 전략을 세우기 위해 점검 절차를 거친다”면서 “관련 인력이 모두 모여 2~3일 작전을 짜는데, 이런 부정 징후는 감사 절차 수행 중에도 계속 살펴본다”고 했다.
만약 이런 항목에서 회계기준과 맞지 않은 점을 발견하고 내부통제 절차가 허술하다 싶은 판단이 들면 회계법인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이들은 부실이 의심되는 요소를 발견하면 기업 측에 추가 증빙을 요청하고 수정을 권고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되는 셈이다.
다른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부실 징후를 발견하면 감사의 정도가 깊고 넓어지는데, 일례로 전산 감사에서 샘플링 검사를 할 때 보통 100개를 샘플(표본)로 썼다면 두 세배 많은 200~300개가 되는 식”이라며 “업무량 자체가 늘어나서 인력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시간당 보수도 더 늘어나게 된다”고 했다.
회계법인의 정밀 조사로 발견한 문제에 대해 경영진이 소명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또 회계법인이 감사 의견 ‘거절’이나 ‘부정적’을 낼 경우 시간 끌기 전략으로 감사보고서 제출을 늦추기도 한다. 이렇게 제출 기한을 넘긴 기업은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에도 10영업일 동안 제출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또 다른 회계업계 관계자는 “물론 감사보고서 제출이 지연된 모든 기업이 부실하다고 볼 순 없지만, 감사인이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덴 이유가 있다”며 “아울러 이들 기업 대다수가 주가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이거나 이미 거래소로부터 관리·환기 종목으로 지정된 곳이 많아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