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4월 1일 15시 52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가구·인테리어 유통 플랫폼 ‘오늘의집’ 운영사 버킷플레이스가 상장을 위해 도입했던 회계기준을 1년 만에 다시 원래 방식으로 바꿨다. 시장에선 오늘의집이 비상장사가 주로 쓰는 회계기준으로 돌아온 것을 두고 당장 기업공개(IPO)에 착수하지는 않을 계획인 것 같다고 해석한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버킷플레이스는 2024년 영업이익이 5억7000만원으로, 2014년 창사 이래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티메프(티몬·위메프), 발란 사태 등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업계 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라 주목받고 있다. 매출액은 2879억원으로 전년(2355억원)대비 22.3% 늘어났다. 당기순이익도 전년(23억1000만원) 대비 127.4% 늘어난 52억6000만원으로 집계됐다.
버킷플레이스 실적과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자본총계(순자산)다. 오늘의집의 순자산은 2023년 말 마이너스(-) 7946억원이었지만, 2024년 말엔 2243억원으로 큰 폭으로 반전했다. 지난 감사보고서에선 부채로 인식됐던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이번엔 자본으로 인식된 덕분이다. 이에 따라 자본잉여금이 3000억원으로 늘어나고, 8200억원에 달하던 파생상품부채가 사라졌다.
이는 오늘의집이 감사보고서 상 재무제표 작성 기준을 흔히 쓰이는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에서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RCPS를 자본으로 보는 K-GAAP과 달리 K-IFRS는 부채로 분류한다. RCPS는 부채 성격을 가진 상환권과 자본의 성격을 지닌 전환권, 그리고 우선권 기능을 모두 갖춘 주식이기 때문이다.
오늘의집은 2023년 회계기준을 K-IFRS로 변경했었다. KDB산업은행·IMM인베스트먼트 등 투자자들과 함께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상장사 또는 상장을 앞둔 회사는 K-IFRS를 사용해야 하기에 통상 스타트업은 덩치가 커지면 회계기준을 K-GAAP에서 K-IFRS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RCPS 보통주 전환이 이뤄지지 않아 RCPS로 확보한 자금이 자본에서 부채로 인식됐다는 점이다. 오늘의집이 그동안 받은 3300억원 규모의 누적투자와 당시 기업가치 기준 전환권과 상환권의 평가액 7000억여원도 모두 회계상 ‘부채’로 기록됐다. 지난해 8월,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오늘의집이 완전자본잠식 상태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망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논란이 커지자 오늘의집은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회계 기준에 의한 착시’라고 해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2022년 오늘의집이 2300억원 시리즈D 투자 유치 이후 K-IFRS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다가 티메프 사태와 엮이면서 위기를 겪었다”면서 “IPO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 최근 홈플러스·발란 사태 등으로 유통업계 분위기가 안 좋은 만큼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 같다”고 했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그해 사업연도나 다음 사업연도 중에 상장 예정인 기업은 K-IFRS를 도입해야 한다. 이같은 내용을 볼 때 오늘의집은 최소한 내년 말까지는 상장을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RCPS로 인한 재무제표 왜곡 문제는 오늘의집을 비롯한 스타트업에서 흔히 발생하고 있다. 금융 애플리케이션(앱)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2019년 인터넷은행과 증권업 진출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RCPS로 인한 자본 적정성 문제를 지적하며 수개월 심사가 지연됐다. 결국 비바리퍼블리카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RCPS 전량을 상환권(R)을 삭제한 CPS로 전환했다.
오늘의집도 2024년 8월부터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4년 8월 2일 발행한 RCPS 2만9997주가 존속기간 만료에 따라 보통주로 전환됐는데, 발행금액은 5000만원이었다. 올해와 내년에도 10만주가 넘는 RCPS 만료가 예정돼 있다.
회계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RCPS에 리픽싱 조항과 투자자 상환권이 포함되는 만큼 상장사가 의무로 채택하는 K-IFRS는 RCPS를 부채로 평가한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거래소는 상장예비심사 신청 전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