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이 기사는 2025년 4월 2일 16시 46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재계 서열 62위 애경그룹이 애경산업(018250) 매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애경산업은 1954년 ‘애경유지공업’으로 출발한 애경그룹의 모태 회사로, ‘케라시스’, ‘2080 치약’, 화장품 ‘루나’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애경그룹이 처음부터 애경산업을 팔려고 한 것은 아니다. 현재 그룹이 최우선으로 매각하려는 곳은 골프장 중부컨트리클럽(CC)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중부CC가 좋은 가격에 팔린다면 애경산업은 내놓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부CC만 팔아도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애경산업 매각 카드까지 꺼내든 이유는 제주항공 때문이다. 애경그룹은 애경산업 매각 검토 전 제주항공에 대한 재정 지원을 위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자구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애경그룹이 애경산업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다면 대형 사고로 위기를 겪고 있는 제주항공을 돕는 한편, 오너 일가의 가족 회사인 애경자산관리에도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중부CC 잘 팔리면 애경산업 안 팔 수도”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AK홀딩스는 최근 애경산업의 경영권 매각을 위해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했다. 삼정KPMG가 애경산업에 관심 있을 만한 잠재적 원매자들과 접촉하는 단계다. IB 업계 관계자는 “다만 아직 진행된 건 하나도 없다”며 “티저레터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정KPMG는 애경그룹이 소유한 중부CC 매각도 함께 주관하고 있다. 중부CC는 경기 광주 곤지암에 위치한 18홀짜리 회원제 골프장으로, 수도권 명문 골프장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골프 업계 관계자는 “중부CC 정도면 잘 쳐줘서 홀당 90억~100억원도 받을 것”이라며 “다만 회원권 부채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야 그룹에 실제로 얼마가 들어올지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부CC는 애경케미칼의 100% 자회사다. 만약 중부CC가 홀당 100억원에 팔린다면 매각대금은 1800억원이 된다. 작년말 기준으로 유동성 입회금(반환 가능성이 있는 구좌)은 269억원, 골프장 입회금은 78억원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애경케미칼에 유입되는 돈은 약 1450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업계 관계자는 “애경산업 매각을 실제로 추진할지 여부는 여전히 중부CC에 달렸다”며 “중부CC가 잘 팔려서 급한 불을 끈다면, 그룹의 모태인 애경산업은 안 팔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 애경산업 팔면 애경자산관리에도 현금 유입... 채씨 일가가 지분 100% 보유

애경그룹이 실제로 애경산업 경영권 매각에 착수한다면,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골프 산업이 하향세를 지속하고 있어 중부CC를 홀당 100억원이나 인정받고 팔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꼽힌다.

또 중부CC가 애경케미칼의 완전자회사여서 매각대금 전액이 애경케미칼에 흘러 들어간다는 것도 문제다. 애경케미칼 역시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자금을 모회사로 넘길 수도 있는데, 지분 구조상 아무래도 번거롭다. 애경케미칼 지분은 AK홀딩스가 60.3%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애경산업은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가 지분을 직접 갖고 있어 매각대금도 이 두 회사가 직접 취할 수 있다. 이런 지분 구조 덕에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는 애경산업 지분을 담보로 대출받아 계열사를 지원해 왔다. 현재 AK홀딩스는 보유 중인 애경산업 지분 45.08% 가운데 43.63%를 대출 담보로 제공하고 있다. 애경자산관리 역시 보유 지분 18.05% 중 15.96%가 담보로 묶인 상태다. 다만 담보평가비율이 담보유지비율 밑으로 떨어져 반대매매가 나올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다.

AK홀딩스는 애경산업을 매각해 현금이 유입되면 제주항공에 대한 재정 지원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말 무안공항 참사 여파로 재정난이 심화한 상태다. 참사가 발생한 작년 12월 29일부터 30일까지 이틀 동안 6만8000건의 항공권 취소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제주항공이 항공권을 판매하고 받은 예약금(선수금)은 2600억원이 넘었던 만큼, 환불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AK홀딩스는 최근까지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제주항공에 대한 자금 지원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AK홀딩스에 담보 대출을 제공한 기관으로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국민은행이 있다.

일각에서는 항공 사고 보험료를 받으면 제주항공의 자금 사정이 트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항공업은 대명소노그룹이나 사모펀드들의 잇따른 진입으로 경쟁이 심화해 있어 자금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제주항공 <자료사진>(제주항공 제공)

애경자산관리 역시 매각대금이 유입되면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애경자산관리의 유동부채(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부채)는 616억원으로 유동자산(1년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 29억원의 20배가 넘었다.

애경자산관리는 채형석 부회장과 동생 채동석 부회장 등 채씨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 회사로, ‘옥상옥’ 구조를 통해 AK홀딩스 지분 19%를 들고 있다. 채형석 부회장 아들 채정균씨도 오너 3세 중 유일하게 지분 일부를 취득해, 향후 경영권 승계 시 애경자산관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상장사인 게 걸림돌... 사모펀드가 사긴 어려워”

시장에서는 애경산업이 기업가치를 얼마나 인정받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채무 관계가 깨끗하고 매출이 매년 잘 나오는 회사여서, 전략적투자자(SI)들이 관심을 보일 만한 매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장사여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애경산업의 시가총액은 4200억원 수준으로, 매물로 나온 경영권 지분(63.38%)의 시세는 약 2600억원이다. 여기에 그룹 측이 원하는 대로 100%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인다면 5000억원대 몸값을 받을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매출이 중국에 너무 치중돼 있는 점도 단점으로 꼽힌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재무적투자자(FI)들이 뛰어들기 쉽지 않은 딜이라는 점도 매각 흥행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PE 대표는 “프리미엄을 많이 주고 상장사를 사면, 향후 주가가 떨어질 경우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일단 경영권 지분을 사고 나머지 주식까지 공개매수해 상장폐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수고를 감수할 PE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