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항공사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국내에서도 소형 항공사가 수익성을 보장 받고 영업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50석에 불과했던 소형 항공사 좌석수 상한이 80석으로 늘어났다. 비행기를 한 번 띄울 때마다 더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법 개정과 함께 국내 소형 항공사 섬에어의 미래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수익성이 개선될 기반이 마련되자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올해 2월엔 국토교통부로부터 소형항공운송사업면허를 취득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운항증명(AOC) 취득을 준비 중인 섬에어는 2022년 설립 이후 가장 분주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7일, 서울 강서구 섬에어 본사에서 최용덕 대표를 만났다. 최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2004년부터 바클레이즈·ABN암로·메릴린치(현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굴지의 글로벌 IB를 두루 거쳤다. 뱅커에서 비행기 조종사로, 이제는 항공사 CEO로 변신한 최 대표는 “항공업의 본질은 금융업”이라고 말한다.
─금융인으로 일하다 항공사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2003년 호주에 살던 친구의 자가용 비행기를 타본 게 첫번째 계기였다. 이후에도 그 장면이 계속 기억 속에 잔상으로 남았다. 결국 2009년 메릴린치를 그만둔 뒤 가드닝리브(재취업 유보 휴가) 기간을 이용해 미국에서 자가용조종사(PPL) 자격을 땄고, 이후 바클레이즈에 다니다 2015년 퇴사하고 사업용 조종사(CPL) 자격을 취득했다.
그렇게 2017년 저가항공사(LCC) 에어로케이에 조종사로 합격했는데, 그 해 말 에어로케이가 국토부로부터 사업 면허를 취득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조종사로 일하지 못하고 경영기획 부서에서 사업 면허 취득을 추진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당시 에어로케이는 소형 항공사 면허도 취득하기 위해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일을 맡아서 하다 보니 ‘내가 직접 회사를 창업해서 도전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업 후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 같다.
“회사를 설립한 2022년 1월부터 지금까지 여러 번의 고비를 겪었다. 직원을 20명 넘게 채용하고 조종사도 6명까지 뽑았지만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일부는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사업 확장을 위한 자금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힘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항공사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다. 그 전까지는 51석 이상의 비행기를 운영하는 회사를 대형 항공사로 분류하고 여러 규제를 적용했지만, 작년 5월 법이 개정되면서 소형 항공기 운영에 대한 기준이 완화된 것이다. 이제는 50~80석 사이의 비행기도 소형 항공사에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소형 항공사 입장에서는 비행기의 수용 정원(capacity)을 완전히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투자를 얼마나 받았는지.
“초기 투자자는 두나무앤파트너스였다. 2022년 10억원을 투자받았다. 그 외에도 델타넥스트가 15억원을 투자했다. 이후 펀딩에 난항을 겪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한 곳으로부터 33억원을 투자받았다. 지금까지 총 7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이제는 투자자들이 우리의 사업 모델과 비전에 확신을 갖고 지원해 주고 있다.”
─현재까지 항공기를 몇 대 계약했는지. 노선에 대해서도 알려달라.
“9대를 계약했다. 먼저 한 대를 리스로 들여오기로 했고, 추가로 8대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한 대에 약 300억원 정도 한다. 항공기는 점진적으로 늘려나갈 예정이다. 울릉도와 흑산도 노선을 시작으로 김포와 울산, 포항, 여수 등 다양한 지방 공항을 연결하는 노선을 개발할 것이다. 2026년 말부터는 국제선 운항도 시작할 계획이다. 대마도 같은 근거리 해외 노선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울릉도와 흑산도는 특별한 공항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기존 대형 항공사들이 운영하지 않는 노선이다. 활주로 길이가 1200m로, 대형 항공사의 운항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공항들을 타깃으로 삼아 경쟁사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이런 섬 노선에서 중요한 점은 슬롯(slot)이다. 슬롯을 확보함으로써 원하는 시간에 우선적으로 비행권을 받을 수 있다.”
─항공업과 금융업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는지.
“자산 관리, 리스크 관리, 수익 모델에 있어 유사한 점이 많다. 항공사도 비행기를 구매하거나 리스해서 운영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산 관리가 필요하다. 비행기를 운영하는 것은 금융업에서 자산을 관리하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항공사는 특히 리스를 통해 비행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비행기는 고정 자산으로,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유지보수와 수리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료 가격, 기상 조건 등 외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이런 리스크를 잘 관리하는 것도 핵심이다."
─항공기의 금융리스와 운용리스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차이를 설명한다면.
“금융리스는 말 그대로 비행기를 구매할 때 자산을 금융 방식으로 리스하는 것을 뜻한다. 신용카드 자산유동화증권(ABS) 방식과 거의 유사하다.
반면 운용리스는 일정 기간 비행기를 빌려서 운영하고 나중에 반납하는 방식이다. 운용리스에서 중요한 점은 정해진 반납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시기에 맞춰 정비를 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다.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상당한 페널티가 부과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금융리스에 비해 더 많은 항공기 관련 지식을 필요로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1호기는 운용리스로 들여온다. 나머지는 금융리스다. 일단 항공기를 구매한 뒤 다른 업체에 운용리스로 빌려주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구조다. 초기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비행기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후속 투자 유치 계획은?
“최소 60억원에서 100억원 규모의 펀딩을 계획하고 있다. 항공사 확장과 사업 모델 개선, 면허 취득 등의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