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3월 5일 15시 49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를 시작한 가운데, 홈플러스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주 채권자 메리츠금융그룹 간 협상이 어떻게 이뤄질지가 관건이 됐다. 메리츠는 홈플러스에 대한 금융권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1조4000억원 중 대부분(1조200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MBK가 메리츠에 대한 10%대 대출 금리를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메리츠는 금리 인하, 원리금 상환 만기 연장 등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주 채권자인 메리츠의 미동의로 회생 계획안이 폐지될 경우, 영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고 담보 가치도 떨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각을 세워 온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MBK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담보인정비율(LTV)이 25%에 불과하다는 점은 메리츠에 유리한 카드로 작용할 전망이다. 어차피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어 채무 조정에 있어 협상력을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한가지씩 유리한 수를 갖고 있어 협상은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 “2달 뒤면 현금 마른다” 회생 신청도, 승인도 ‘속전속결’
5일 투자은행(IB) 및 법조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전날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기업회생 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신청 당일 개시 결정이 떨어진 것인데, 이는 전례 없는 일이라고 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회생 기업이 어음으로 빚을 돌려막다 채권자와 근로자들에게 돈을 더 이상 지급할 수 없을 때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반면, 홈플러스의 경우 현금 여력이 있고 담보 자산가치가 충분할 때 선제적으로 회생 신청을 했기 때문에 개시 결정이 신속하게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회생 신청은 메리츠도 사전에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MBK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휴일 동안 갑자기 회생을 결정한 것이어서, 드래프트(초안)도 짜지 못한 상황”이라며 “메리츠와의 사전 소통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홈플러스는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으로 매달 6000억~7000억원씩 조달해 영업 대금을 충당해 왔다. 이런 상황에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가 나란히 홈플러스의 단기 신용등급을 A30에서 A3-로 하향조정하며, 국내 자본시장에서의 차환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다. 단기 신용등급 A3-는 장기 회사채 시장에서의 신용등급 BBB-와 동일하게 평가되는데, 여기서 한 단계 더 내려가면 정크본드 수준(BB+)이 된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문제가 없어도 두 달 뒤면 현금이 마를 수 있다고 판단, 갑작스레 회생을 결정하게 됐다는 게 MBK 측 설명이다.
◇ 회생 성공 여부, 메리츠에 달려
홈플러스의 회생 결정으로 난처해진 곳은 메리츠금융그룹이다. 현재 국내 금융권의 홈플러스 관련 대출·지급보증 등 위험노출액은 1조4000억원인데, 그 중 대부분인 1조2000억원을 메리츠증권·화재·캐피탈이 빌려줬다. 메리츠는 작년 5월 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차환) 당시 단독 주선사로 나섰는데, 금리가 10% 안팎에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금융그룹 전체에서 메리츠증권의 익스포저가 6551억2000만원으로 가장 크고, 캐피탈과 화재가 각각 2807억7000만원씩 부담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메리츠는 고금리 대출을 통해 어마어마한 이자를 벌어들였는데 그런 공격적인 영업이 오히려 독이 된 꼴”이라며 “원리금 지급이 유예돼 돈이 당분간 묶여있게 됐고, 이율도 대폭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메리츠는 홈플러스 회생 성공의 키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홈플러스는 6월 3일까지 법원에 회생 계획안을 제출할 예정인데, 그 전에 관계인 집회에서 가결이 돼야 한다. 담보 채권자의 경우 4분의 3 이상, 담보가 없는 일반 회생 채권자는 3분의 2 이상 동의해야만 가결 조건을 충족한다. 담보채권(CP 포함) 총액 2조1000억원 가운데 1조2000억원이 1순위 담보권자 메리츠의 몫인 만큼, 메리츠가 동의하지 않으면 회생 계획안은 부결되는 구조다.
MBK는 10%에 육박하는 인수금융 금리를 내려줄 것을 제안할 전망이다. 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포괄적 금지 명령이 내려져 차입금과 이자 상환이 유예되는 만큼, 최악의 경우 메리츠가 이자를 한 푼도 못 받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회생채권 중 공익채권으로 분류되는 근로자 임금과 상거래 채권 등만 먼저 갚으면 된다. 메리츠로부터 빌린 돈은 상환 우선 순위에 없다.
◇ 금리 내려 양쪽 ‘최악의 상황’ 막을 듯
만약 메리츠가 금리 인하 등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회생 계획안은 폐지된다. 즉, 법적으로 ‘회생 신청을 하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창권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회생 계획안이 폐지된다고 해서 곧바로 파산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시장에서는 홈플러스를 ‘회생에 들어갔다가 실패한 회사’로 볼 것”이라며 “이는 결국 회사 영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영업에 지장이 생기면 메리츠의 담보, 즉 홈플러스 부동산 가치는 떨어질 공산이 크다. 또 다른 회생 전문 변호사는 “메리츠는 자기들이 담보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확신하는데, 홈플러스 영업이 잘 안되고 서플라이 체인이 끊어지면 회사가 망가질 것이고, 이는 결국 담보 가치의 급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일부 변두리 지역의 경우 마트를 허물고 나면 땅의 가치가 기존 감정가의 10~20%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회생이 실패할 경우 메리츠가 홈플러스 부동산 자산을 강제 매각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회생 전문 변호사는 “대주주 위에 담보 채권자가 있다면, 담보 채권자 위에는 종업원이 있다”며 “메리츠가 종업원들을 강제로 내보내고 부동산을 매각하는 게 가능하겠냐”고 반문했다. 결국 메리츠 입장에서도 홈플러스의 정상 영업이 지속되도록 회생 계획안에 동의하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다.
다만 현재로서는 메리츠 쪽에 협상력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동산 담보 가치가 5조원에 육박해, LTV가 25%로 상당히 낮기 때문이다. 김창권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담보를 충분히 잡고 있는 상황이라면, 담보 가치가 어느 수준까지 떨어져도 원금을 충분히 건질 수 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권리를 실행해 돈을 받아 가면 된다’고 버틸 힘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