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유동성 문제로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 /뉴스1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감이 확산하는 것과 반대로 부실채권(NPL)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는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초 연착륙을 주문하던 정부가 금융업계에 충당금 상향 등 부동산 PF 정리 로드맵을 제시한 것을 두고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 작업이 시작된 것 아니냐고 기대를 내비치고 있다. NPL 시장이 호황기에 접어들 것이라고 보고 채비에 나서고 있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다수의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출자자(LP) 등은 NPL 급증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PEF 운용사는 도산 우려가 있는 국내 건설사들을 추리며 스페셜시츄에이션펀드(SSF) 조성을 검토 중이며, LP들은 부동산 NPL 펀드에 출자할 자금을 준비하고 있다.

운용사 등 매수자들은 부동산 위기에 따른 정부 지원 정책이 나오자 시장을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착륙’을 강조하던 금융당국은 최근 들어 강도 높은 정책과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정상적 사업이 어려운 곳마저 만기를 연장하는 등 부실 사업장 정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며 부동산 PF 정리 로드맵을 공개했다. 연체 유예·만기 연장이 반복되는 등 사업성이 낮아진 사업장은 지난해 말 결산 시 예상 손실을 100%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내용이 골자다.

PF 시장에 대한 정책 방향이 단순 만기 연장에서 구조조정을 통한 정상화로 바뀜에 따라 시장에서는 ‘4월 위기설’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부동산 NPL 시장은 최근까지는 공적 자금의 원조 탓에 커지기 힘들었으나, 총선 이후까지 정부의 지원이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여기에 더해 오는 4월 15일은 법인체 감사보고서 제출 마감일로, PF 현장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면 부실 사업장이 표면에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건산연)의 ‘부동산 PF 위기, 진단과 전망, 그리고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알려진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134조3000억원이다. 새마을금고 등에서 실행된 PF 대출 잔액과 유동화 금액을 모두 포함할 경우 실제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202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추정치 100조2000억원의 두 배를 넘는 규모다. 일부 저축은행 등은 충당금을 적립해 순손실을 키우기보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NPL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건설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PEF 운용사나 LP들은 물량이 쏟아질 것으로 보고 준비에 나섰다. 국내 한 LP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건설업체에 ‘뼈를 깎는 자구책을 마련하라’고 강도 높게 발언하고, 금융권에는 충당금 적립률 상향을 주문하는 등 정리할 곳은 정리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전환했다”며 “NPL을 전문적으로 인수하는 펀드가 만들어지면 당장이라도 출자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건설근로자공제회는 최근 부동산 대출 펀드 출자사업 공고를 내고 위탁운용사(GP)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위탁 운용 규모는 총 2000억원 수준으로 4개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IBK금융그룹과 연합자산관리(유암코)는 일찌감치 1500억원 규모의 부동산 NPL 펀드를 가동했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도 최근 KB자산운용을 GP로 선정해 NPL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공적 자금 지원이 무한하게 이어질 수 없으니 조만간 매물들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몇몇 운용사들은 정부 지원 종료 이후 NPL 가격 메리트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