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길어지면서 건설사가 발행하는 채권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있다. 앞서 현대건설, SK에코플랜트, 롯데건설 등 대형 건설사는 목표액 조달에 성공했지만, 중소형사가 발행하는 채권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우량채가 필요한 하이일드 펀드도 건설채는 기피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국내 자본력 1위 신탁사인 한국토지신탁(A-)에 이어 중견 건설사인 HL D&I(BBB+)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주문액이 모집액에 미달)되자 물량을 떠안아야 하는 주관사들도 부담이 커지고 있다.

광주 남구 봉선동에 짓고 있는 한 아파트 건설 현장.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뉴스 제공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중견 건설사인 HL D&I는 1년물로 700억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최대 8.5%의 금리를 제시했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초 모집한 700억원이 전량 미매각되면서 회사채 발행 주관을 맡은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IBK투자증권, BNK투자증권, 대신증권 등이 최상단 금리에서 나눠 인수할 예정이다.

지난 14일 한국토지신탁도 회사채 1000억원을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 나섰다가 투자 수요를 메우지 못했다. 2년물 700억원, 3년물 300억원으로 구성했는데, 이 중 3년물은 완판됐지만 2년물에서는 주문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 미매각 물량은 주관사인 KB증권이 떠안게 됐다.

한국토지신탁은 국내 부동산 신탁사 중 자본력이 가장 우수한 곳으로 꼽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타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앞서 한국신용평가 한국토지신탁의 신용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낮춘 바 있다.

공모주 우선 배정 혜택을 노리며 BBB급 이하 채권을 담아야 하는 하이일드 펀드도 비우량 건설채는 담지 않는다. 공모주 시장이 흥행하면서 펀드 규모를 키우기 위해 비우량채 편입을 늘려야 하지만, 선호하는 물량은 따로 있다. 한 채권 운용역은 “하이일드 펀드는 공모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정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하이일드 채권만 담아야 한다”며 “두산에너빌리티와같이 안전한 종목은 A급보다 더 낮은 금리에 팔린다”고 설명했다.

실제 두산에너빌리티(BBB)는 지난 19일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기관 수요가 몰려 신용등급 A+ 회사채와 비슷한 수준에서 발행금리가 정해질 전망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수요예측에서 2년물(400억원)은 민평금리 대비 -179bp, 3년물(100억원)은 -150bp에 모집 물량을 채웠다. 당시민평 금리로 추정하면 발행금리는 연 4%대 내외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미매각 물량을 떠안게 된 주관사들도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올 초 현대건설, SK에코플랜트 등 대형 건설사들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성공하자 건설채 투자심리가 다소 개선된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보통 주관사들은 미매각으로 떠안은 물량을 발행금리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서 다시 기관에 판매하곤 한다”며 “해당 물량이 장내 시장에 풀리면, 높은 금리에 매력을 느낀 리테일 수요가 몰릴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