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유예했던 25% 상호관세 부과가 현실로 닥친다면, 한국 시중은행들은 꼼짝없이 이중고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 속 은행들의 순이자마진(NIM)이 줄어드는 중인데 경기 둔화로 위험 비용 부담까지 커지는 것이죠.”
레나 곽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선임연구원은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는 한국 경기 둔화를 일으키며 이는 곧 은행 건전성 악화로 이어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곽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서 한국, 싱가포르, 인도, 동남아 금융 시장 분석 보고서를 발행하는 애널리스트다. 그가 속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2006년 블룸버그가 설립한 글로벌 시장 연구 조직으로 8개국 12개 사무국에 500여명의 전문가들이 속해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200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을 분석해 가공한 600여개의 데이터를 블룸버그 터미널 단말기를 통해 배포한다.
곽 선임연구원의 최근 관심사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한국 금융 시장에 미칠 충격이다. 특히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화 정책과 관세 정책이 한국 경제와 금융사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고 시장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 적자 해소를 목적으로 한국에 원화 절상(환율 하락)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초 1380원대에서 유지되던 원·달러 환율은 31일 장중 한때 1347.1원까지 하락, 지난해 10월 이후 최초로 1340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곽 선임연구원은 원화 절상을 양날의 검에 비유했다. 그는 “원화 절상은 한국에서 생산된 수출품 가격을 끌어올려 수출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무역금융 수요를 줄게 한다”며 “대출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수출 기업 비중이 높은 은행의 건전성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만 원화 절상이 발생하면 은행 입장에서 외화 부채 비용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은행은 대출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외환 헤지 수단을 활용해 원화 절상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상호관세 부과도 한국 경제에 드리운 그림자다. 돌아오는 8일이면 미국 정부가 유예했던 25% 상호관세 부과가 시작된다. 이미 미국 현지 기업들은 관세 부과에 대비해 한국산 제품 수입을 줄이는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6월 대미 수출액은 112억4000만달러(약 15조2313억원)로 전년 대비 0.5% 감소했다. 특히 효자 품목인 자동차 수출이 위축되면서 대미 수출 전반이 타격을 입은 것으로 풀이된다.
곽 선임연구원도 한국의 수출 감소 양상을 엄중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한국처럼 수출 주도형 경제를 구축한 나라에서 무역 감소는 곧 생산 및 고용 감소와 더불어 기업 투자 축소까지 발생한다”고 짚었다. 이어 “생산 축소는 고용 및 소득 감소, 그리고 내수 위축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기업에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해 “은행이 무역 산업 대출 문턱을 높이고 안전한 대출 자산 비중을 높이게 하는 방아쇠가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대외적인 환경 외에 국내 은행들이 가진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대출 구조가 부동산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는 것이 곽 선임연구원이 주목한 지점이다. 그는 “싱가포르는 DBS, OCBC, UOB 등 주요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위주로 전개하며 이는 무역 중심 국가의 성장성과 직결돼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곽 선임연구원은 “한국 은행들은 주택담보 중심의 가계대출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며 “이로 인해 수익성이 부동산 시장 사이클에 민감하게 좌우되며, 실물경제 투자 흐름과는 단절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금리가 하향 안정세에 접어들면 주택 대출 기반 이자 수익을 올리기 어려워지기에 ▲수수료 기반 수익원 ▲디지털 전환 ▲해외시장 다변화 등의 전략으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 구조적 성장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을 계기로 금융권이 풀어나가야 할 목표로는 ‘신뢰감 형성’이 제시됐다. 곽 선임연구원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상생금융’을 국정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며 “선제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는 금융사는 정책적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규제에 따른 부담, 수익성 저하라는 이중고를 신뢰감 아래 풀어낼 수 있는지가 결국 금융사의 입지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