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연합뉴스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보호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기 위한 대통령령을 입법예고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지난달 16일 배포했습니다. 보도자료에는 ‘예금보험공사 보호대상 예금’ 종류가 나열돼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보험회사 보험료’였습니다.

보도자료를 접한 기자는 의아했습니다. 고객이 보험사에 납부한 보험료는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금보험공사에 문의하니, 관계자는 “보험에는 예금이 없기 때문에 낸 보험료를 보호 대상 예금이라고 보는 것이다”라며 “실제 고객에게 (예금자보호에 따라) 돈을 지급할 때 기준은 해약환급금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보호 대상은 보험료라고 적어 놓고, 실제 지급할 때는 해약환급금이 기준이라니. 소비자는 한 번에 이해할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우리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 돈을 맡깁니다. 그런데 은행이 파산해 지급불능 상태가 되면 피 같은 돈은 사라집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나라가 은행 대신 돈을 돌려줍니다. 전부 돌려줄 수는 없고 한도가 있죠. 2001년부터 한도는 5000만원이었는데, 24년 만인 오는 9월부터 1억원으로 늘어납니다. 이제 은행이 파산해도 최대 1억원까지는 돌려받을 수 있게 됩니다.

보험 가입자도 보험사에 보험료를 냅니다. 이후 사고가 발생하거나 질병에 걸리면 보험금을 받게 되죠. 마찬가지로 보험사가 파산할 때를 대비해 국가가 한도 내에서 보험사 대신 돈을 지급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돈을 돌려줘야 할까요. 지금까지 낸 보험료일까요, 앞으로 받을 보험금일까요.

정답은 낸 보험료가 아닌 해약환급금입니다. 해약환급금은 보험 계약을 해지했을 때 받는 돈입니다. 문제는 해약환급금은 지금껏 낸 보험료보다 적다는 점입니다. 상품 자체가 그렇게 설계됐습니다. 특히 상해·질병 등을 보장하는 보장성 보험은 이자가 없는데 사업비는 차감되기 때문에 저축성 보험보다 해약환급금은 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 보험업계가 해약환급금을 표준 상품보다 적게 지급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 무·저해지 상품을 집중 판매해 더 문제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무해지 상품에 가입한 고객은 해약환급금이 0원이기 때문에 보험사가 파산하면 낸 보험료가 얼마든 한 푼도 받지 못합니다. 저해지 상품은 낸 보험료보다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만 받을 수 있겠죠.

서울의 한 MG손해보험 지점. /뉴스1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고객은 많지 않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장성 보험 가입자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답(예금자보호 대상은 해약환급금)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210명(17.5%)에 불과했습니다. 받을 보험금이 보호 대상이라고 답한 사람은 505명(42.1%)이었고, 낸 보험료가 보호된다고 생각한 소비자도 483명(40.2%)에 달했죠.

황순주 KDI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유사시 보험금이나 보험료가 보호될 것으로 예상한 가입자는 이보다 적은 해약환급금이 보호됨에 따라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맹점이 드러난 것이 MG손해보험 사태입니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된 MG손해보험은 매각에 실패하자 보유했던 계약을 조건 변경 없이 5개 손해보험사로 이전시키기로 했습니다. MG손해보험이 청·파산(계약종료)하면 예금자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계약자가 1만1470명(1756억원)에 달할 정도로 피해가 막심했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었습니다. 예금자보호 대상에 포함됐어도 해약환급금만 지급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피해는 더 컸을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예금자보호 대상을 보험금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실제 미국·영국 등 해외는 해약환급금과 보험금 모두 보호 대상이죠. 미국은 보험사가 파산해도 고객은 25만~50만달러 한도 내에서 보험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은행 한도(25만달러)보다 높습니다. 은행 예금자보다 보험 고객의 보호를 더 두텁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