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이임식을 마친 뒤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은행 경영진의 부당대출 늑장 보고 혐의 논란에 마침표가 찍혔습니다.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은 공개적으로 늑장 보고의 위법성을 강조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번 사건, 금융감독원에 불어닥칠 역풍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복현(號)호 금감원 특유의 중간 검사 결과 발표가 조직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 관심이 모입니다.

서울남부지검은 최근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의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조 전 행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지난해 금융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의 700억원대 부당대출 사건을 인지하고도 수사 기관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금융사 대표는 임직원이 직무 관련 위법 행위 사실을 파악하면 즉시 수사 기관에 보고해야 합니다. 우리은행 경영진이 대출 문제를 인지한 시점은 2023년 9월쯤, 수사기관에 관련자들을 고소한 시점은 지난해 8월입니다.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오른쪽)과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이 지난해 6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국내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검찰 수사 시작 전 일찌감치 조 전 행장을 저격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금감원입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우리은행 경영진을 직접 거론하며 “금융사고 미보고 등 사후대응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이후 이 전 원장은 금감원 임원 회의에서 우리은행 경영진의 늑장 보고를 지적하며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발언했습니다. 이 당시 금감원은 우리은행 검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금감원은 검사가 끝나기도 전에 조 전 행장이 일부러 부당대출 사실을 감춘 것처럼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의 최종 판단이 무혐의로 나왔습니다. 금감원은 애먼 사람을 잡은 격이 됐습니다. 금융권 내에서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금감원이 조 전 행장의 위법 혐의를 조사할 수는 있지만, 발표가 성급했다는 평가입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도 금감원 판단과 검·경 혹은 사법부 판단이 다른 경우는 많았지만 큰 논란은 없었다”며 “이번 사안은 금감원의 중간발표가 조 전 행장을 범법자로 몰아붙인 점이 문제다”라고 짚었습니다.

금감원의 중간발표는 단순한 논란에 그치지 않습니다. 위법성을 다툴 여지도 있습니다. 금감원 설립 근거인 금융위원회법엔 “금감원 임직원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타인에게 누설하면 안 된다”는 비밀 유지 의무 조항이 있습니다. 금감원 스스로도 홈페이지에 “검사 결과 조치가 진행 중인 금융사에 대해서는 공시되지 않는다”며 비밀 유지를 강조합니다. 이미 감사원은 금감원의 중간발표에 대한 비밀 유지 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검사결과 조치가 진행 중인 금융사에 대해서는 공시되지 않는다"는 공지가 쓰여 있다.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갈무리

금감원은 검·경처럼 강제 수사권을 쥔 기관도, 법원처럼 범죄를 판단하는 기관도 아닙니다. 검사 과정에서 위법 혐의를 발견할 수 있지만, 독자적으로 혐의를 확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금감원도 이러한 기관 특성을 고려해 중간발표를 지양했습니다. 조 전 행장 사례처럼 피의 사실이 확정된 것처럼 알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논란의 진원지인 이 전 원장은 금감원을 떠났습니다. 새로 올 금감원장은 중간발표 관행을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전직 금감원 자문위원은 “이 전 원장의 전례 없는 중간발표 스타일이 논란을 자초했다”며 “금감원은 섣부른 여론몰이에 힘 쏟을 게 아니라 과거처럼 금융위 산하 기관으로서 본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