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본현대생명 제공

푸본현대생명의 보험금 지급 능력 지표가 사실상 ‘마이너스’로 진입했다. 최근 3년 연속 적자를 내며 보험금 지급에 사용할 자본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손실 흡수에 핵심 역할을 해야 할 기본자본은 지난해 말 -8500억원으로 급락했고, 이에 따른 가용자본(지급여력금액)도 -1915억원을 기록했다. 최대 주주인 대만 푸본금융그룹이 자금을 추가 투입하는 것 외에는 위기를 돌파할 뾰족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푸본현대생명은 올해 1분기 72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연도별 당기순이익은 2022년 -2109억원, 2023년 -1105억원, 지난해 -340억원으로 적자 폭이 줄었으나, 올해 1분기 다시 확대되며 위기에 놓인 모습이다.

기업의 곳간인 이익잉여금은 지난해 말 -3624억원으로 전년(-3211억원)보다 악화됐다. 이익잉여금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지금껏 푸본현대생명이 벌어들인 돈보다 누적된 손실로 빠져나간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푸본현대생명의 장기간 적자는 연금과 저축성 보험 비율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새로운 회계제도(IFRS17)에서 저축성 보험은 순이익 증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다. 저축성 보험은 미래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부채로 인식된다. 퇴직연금 비율이 높은 푸본현대생명은 IFRS17 적용에 따라 보장성 보험 판매 비율을 높여야 했는데, 영업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적자 탈출에 실패했다. 지난해 말 푸본현대생명의 보험료 수입 2조6203억원 중 퇴직연금은 57.7%(1조5135억원)를 차지하고 있다.

2012년 푸본현대생명(당시 녹십자생명)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된 뒤 사명을 현대라이프로 바꿨다. 이후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의 퇴직연금을 대거 확보해 2021년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IFRS17 도입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2022년 293억원의 순이익 기록이 IFRS17 적용에 따라 -2051억원으로 뒤집어진 것이다. 현대라이프는 2018년 푸본금융그룹이 최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사명을 현재의 푸본현대생명으로 바꾸고 영업을 이어오고 있다.

일러스트=손민균

보험금 지급 능력도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말 지급여력비율(킥스)은 157%로 금융 당국 권고치(150%)를 웃돌았는데, 경과조치 효과를 빼면 킥스는 -14.5%로 직전 분기(17.3%)에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경과조치 적용 전 킥스가 마이너스인 곳은 국내 보험사 중 푸본현대생명이 유일하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돼 파산 절차에 돌입한 MG손해보험도 3.4%다. 경과조치는 킥스 도입으로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이 떨어질 것을 고려해 신규 위험액 측정을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푸본현대생명의 기본자본은 2023년 말 -3825억원에서 지난해 말 -8508억원으로 2배 이상 줄었다. 총자산 규모가 비슷하면서 최근 완전 자본 잠식에 빠진 KDB생명(-4181억원)보다도 적다. 기본자본은 자본금과 이익잉여금 등으로 구성돼 위기 발생 시 손실을 오롯이 흡수하는 핵심 자본이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무너지기 쉬운 재무 구조인 셈이다.

기본자본을 토대로 산출되는 건전성 지표인 ‘기본자본 킥스’는 경과조치 적용 후 43.1%로 KDB생명(24.8%)보다 높다. 하지만 경과조치 적용 전(자본감소분 제외)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64.5%로 KDB생명(-31%)보다 낮다.

금융 당국은 IFRS17 도입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과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회계제도 변경에 따라 새롭게 인식되는 보험 위험을 한 번에 반영하지 않고 최대 10년 동안 나눠 점진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과조치 효과가 줄어드는 만큼, 푸본현대생명의 부담은 더 커지는 셈이다. 푸본현대생명은 2023년 3월부터 경과조치 적용을 받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푸본현대생명의 순이익이 반전 상승하지 않는 이상 추가 자금 투입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진단한다. 푸본현대생명은 2021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85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지난해 말 기준 보유한 신종자본증권은 1000억원, 후순위채권은 8925억원에 달한다.

푸본현대생명은 올해 1분기 보고서에 건전성 지표를 공시하지 않았다. 이달 말까지 확정치를 산출해 공시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1분기 적자 규모가 지난해 말보다 약 2배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건전성 지표가 더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